8월 5일 새벽 퇴근 때 약 15분간 소낙비가 내렸다. 연일 폭염이 지속되고 있던 터라 셔틀버스 안에서 느닷없이 만난 소낙비는 반가웠고 신선했다. 한여름의 소낙비다. 창가에 사선으로 내리꽂힌 거센 빗줄기들은 굵은 물방울로 으깨져 올챙이 모양새로 쉼 없이 기어 내려갔다.
한 달 이상 지속된 장마 때의 장대비는 나로 하여금 물속에 잠겨 지내는 느낌을 갖게 했다. 비를 좋아하는 까닭에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의 소나기는 요즘 올림픽 시즌으로 빗대자면, 마라톤 레이스 관람의 지루함을 단번에 해소시키는단거리 경주 관람 같았다.
이번 파리 올림픽 남자 육상 100미터 결승전은 10초도 안 돼 끝났다. 인간 총알이다. 육상 혼성 1600미터 계주 결승전 땐 4위로 달리던 네덜란드 마지막 주자 여자 선수가 앞선 선수들을 한 명씩 제치더니 막판에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는 짜릿한 장면을 연출했다. 소낙비가 그런 맛이었다고나 할까.
2년 전 한여름 때 지금 일하는 센터의 맨 위 창고 3.3층에서 몇 달 근무한 적이 있다. 사방에 창문 하나 없는 이곳은 많이들 일하기 꺼려하는 찜질방 같은 곳이었다. 비교적 더위를 잘 견디는 편인 나는 이곳을 지정 계약직 사원처럼 일했다.
선반에 보관된 상품들이 가벼운 편이고 분위기도 괜찮은 것에 더해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철제 지붕을 퉁퉁 때리는 빗줄기 낙하 소리가 그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내 호기심은 동하기 시작했고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둔탁하고 음높이 조절이 안 되는 타악기 연주 소리 같은 그 소리는 일터를 쉼터로 상상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나라는 존재를 이상한 나라로 이끌고 가는 것 같았다. 내 느낌에 공감하는 사원이 거의 없어서 아쉬웠지만.
8월 7일 아침 오랜만에 노원중앙도서관에 들렀다. 근처 횡단보도 쪽에 걸린 플래카드 속 ‘북캉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은 쿨하다!"라는 문구도 신선하다.
오전에 옅은 세기의 비가 내렸다. 보슬비다. 이 단어를 파생시켰을 ‘보슬보슬’이라는 의태어가 정겹다. 비 그친 후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산책을 나섰다.
도서관 마당엔 보슬비를 맞아 윤기가 더해진 10여 그루의 배롱나무 꽃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오후엔 비가 그치는 걸 넘어 하늘에 흰 뭉게구름들이 맑게 떠 있기까지 이르렀는데 만개 직전의 분홍 배롱나무 꽃과 조화를 이루었다. 가을까지 개화를 이어갈 기세다.
도서관 뒤쪽 작은 동산엔 맥문동 꽃이 가득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이름을 모르고 있을 때 내가 ‘보라돌이’라고 명명한 적이 있던 꽃이다.
길쭉한 자루 모양의 꽃차례 맥문동 꽃은 그늘에서 빗물을 머금고 싱싱하게 솟아들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는 동산 관리인에게 물으니 꽃을 피운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빗물이 영양주사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여름날의 나는 세찬 소나기를 좋아한다. 반면 여름날의 배롱나무 꽃과 맥문동 꽃은 자기 꽃잎에 상처를 주지 않을 보슬비를 좋아할 것 같다.
소낙비가 지상을 강타해도,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려도, 심지어 물기 없는 뙤약볕이어도 상관없다. 올여름부터 어딜 가도 내 소지품엔 양산이 있으니까. 하늘에서 어떤 성격의 비와 빛이 내려와도 나는 즐길 테니까.
일을 쉬는 입추 절기 날, 나는 이렇게 느닷없이 소낙비 같은 글 하나를 썼다. 어쩌면 보슬비 덕분일 것이기도 하겠다. 보슬보슬 나뒹굴던 문장들이 그럭저럭 엮이어 보잘 것 없는 ‘글꽃’ 하나를 피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