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그저께 아침 솜으로 틀어막은 듯한 코의 압박감 속에서 잠을 깼다. 부랴부랴 코로나 간이 검사를 하고 병원에 갔다.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 타온 약을 끼니때마다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약은 나를 하루 종일 잠만 자게 했다.
다음날은 눈이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 그런 날에 다시 병원에 갔다. 365일 문을 여는 병원이라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엔 독감 검사도 하고 주사도 맞고 약도 새로 처방받았다. 효과가 있어 방 정리도 대략 할 수 있는 기운이 났다. 밤에는 약은 안 먹고 와인을 마시는 만용까지 부렸다. 크리스마스이브 아닌가. 와인 기운인지 감기 기운인지 이날 밤에 영화 <Meet Joe Black>를 보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주책을 부리기도 했다.
다음날 25일도 여전히 ‘감기 크리스마스’다. 나는 보통 책상에 앉아 책을 보지만, 요 며칠은 매트리스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목에는 목도리까지 두른 채로 지냈다. 그런 상태로 전에 읽다 만 노발리스의 <푸른 꽃>을 읽었다. 해를 넘기기 전에 완독하고 싶었다. 감기로 몽롱한 상태인데 환상적 낭만주의의 걸작인 <푸른 꽃>은 나를 더욱 몽상에 빠지게 했다.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산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작은 새소리였다. 그 소리가 귀엽고 좋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소리는 내 호흡과 맥을 같이 했다. 코로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새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진실이 밝혀졌다. 콧물로 막혔지만 그 콧속 사이로 틈새가 있어서 그 틈새로 공기가 들어가며 내는 소리가 새소리였던 것이다. 부러 숨을 불규칙적으로 들이마셔 보았다. 그럴 때마다 정확하게 내 몸은 새 울음소리를 만들어냈다. 꿈속의 파랑새가 내 콧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브날 대충 청소를 해놓아서 그런지, 작은 방 매트리스에 앉아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정돈된 방을 둘러보았다. 내 눈앞 건조대에 참새들처럼 촘촘히 걸터앉은 양말들이 몸을 말리면서 가습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식사 때마다 창문을 열어 새로운 공기를 들여보내고 묵은 반찬 냄새를 밖으로 내다보냈다. 성탄 축하 카톡 소리가 자꾸 울려 정신이 혼란해 등한시하기로 했다. 무음의 핸드폰이 저쪽 책상 위에 시무룩하게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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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날 내 코를 작은 새로 만들어준 공기. 나는 그 공기의 특정 시간 내음에 대한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다. 10년도 더 된 부산대 대학원 유학 시절이다.
도서관에서 수업 준비를 끝내거나 논문 작업을 하고 나면 나는 으레 학교 근처 ‘김해 원조 뒷고기' 집에 들르곤 했다. 따로 떼어놓은 찌꺼기 고기라 하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혼자라도 3인분을 기본으로 시켜야 하는데, 나는 젊은 직원이 구워준 뒷고기를 밥으로, 소주를 반찬으로 삼아 두 시간 넘게 버티고 앉아 다 먹고 나왔다. 학생들로 가득했던 식당이 한산해질 때까지.
친절한 젊은 사장과 인사를 주고받고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이내 온천천 옆 도로를 달렸다. 술 냄새 때문에 아저씨가 열었는지, 아니면 답답한 내가 열었는지 기억이 갈지자이지만 암튼 창밖으로 얼굴을 살짝 내밀고 바람을 쐤다. 그리고 그때마다 얼굴을 때리는 공기의 그 야릇한 내음에 취하곤 했다. 그 내음에 하천의 수분이 섞여 있는지 모르지만 그 내음은 언제나 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그리고 매번 동일한 느낌의 내음이었다. 나는 그 내음이 좋았다.
술을 안 마셔도 똑같았다.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부산행 KTX 막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하면 지하철 역사의 셔터가 내려 있는 시간이다. 부산진구 산동네까지 가는 택시 창밖으로도 그 내음이 났다. 택시가 달리는 도로 한참 너머로 동천이 있었다. 그 내음에 또한 수분이 섞여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부산 밤의 내음이리라 여겼다.
그런데 졸업 후 상경하고 정착한 뒤다. 어느 날 역시 술 마신 다음 지하철이 끊겨 탄 택시 창밖에서도 그 내음이 똑같이 나는 것이었다. 택시는 중랑천 옆 동부간선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역시 수분이 섞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한밤중 도심의 내려간 기온에 맞게 내려앉은 공기의 밀도 덕분에 그럴 거라고도 생각했다. 부산의 그 공기 내음을 서울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어 놀랍고 반가웠다.
아마도 봄에서 가을까지의 밤 내음이었으리라. 겨울엔 창문을 열 수가 없으니 알 수 없고, 냉기 가득한 공기에 저 그윽한 내음이 나지는 않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암튼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야 더 진하게 맡을 수 있는 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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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기와 꿈>에서는 상승하는 공기를 주제로 한 역동적 상상력 내용이 가득한데, 나의 그 내음도 상상력이 가미돼 나만이 그런 내음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또 바슐라르는 이 책 11장 '바람'에서 청각을 시각보다 더 극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나에게도 청각이 한몫을 한 셈이다. 감기로 코가 막힌 바람에 후각의 상상력이 부실해졌지만 청각(새소리)이 빈자리를 채워준 것이다.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26일이 되어서야 기운을 차려 책상 위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앉아서 노트에 적은 이 글의 초안도, <공기와 꿈>을 읽어서인지 상상력이라는 효모가 가미돼 노트북 화면에서 부풀려져 길게 적혔다. 내 글은 그렇게 가닥을 잡아갔다.
며칠 전 한 지인이 내게 "쨍하게 차가운 요즘 새벽공기 느낌이 어떠할지" 물었다. 이 글은 그 물음에 대한, 조금 방향이 틀어진 나의 긴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