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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Jan 24. 2023

토끼해, 국제정세는 어떻게될까 2

전통적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블록 이탈과 재편성


전통적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본격적인 중국 압박으로 인한 미중갈등의 구도 강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점철된 2022년은 탈냉전 이후 냉전에 가장 유사하게 근접한 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유엔에선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가속화되고 한반도 주변에서도 한미일 대 북중러 3대3 대립구도가 다시 심화되는 상황이다. 


반면, 전통적 냉전기로 회귀한다고 보긴 힘든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가 2020년 잡지 포린폴리시에서, 미중 양국이 과거 냉전시기처럼 서로 핵무기 위협은 하지 않는다는 점, 양국간 무역과 자본시장 연결이 상당히 강해, 미ㆍ소처럼 경제가 분리 되지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냉전 2가 아닌 냉전 1.5”라고 전망한 적이 있는데, 지금의 국제질서를 조망할 때 참고할만하다고 보인다. 냉전적 대결의 심화가 가속화되지만 냉전기의 전통적 재현은 아닌 상황인 것이다.     

JTBC [비정상회담]

중동의 새판짜기사우디아라비아 탈미친중’  

지난해 가장 눈에 띄는 블록 이탈 현상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12월 8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다. 시진핑은 정상회담장인 사우디 왕궁으로 이동하면서 아라비아 말을 타고 중국과 사우디 국기를 든 사우디 왕실경비대의 호위를 받는 등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 방문 당시의 싸늘한 분위기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물가가 상승하자 원유 증산을 부탁했지만 사우디는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왕세자는 시진핑 주석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고 중국이 주권, 안보, 영토의 온전성을 수호하는 것을 지지하며, 인권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중국의 내정에 외부세력이 간섭하는 것을 확고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 자체는 미국도 인정하는 중국의 기본적 대외방침이지만, 미중간 대만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단 분석이 많다. 

특히 인권을 구실로 한 내정간섭을 반대한다고 언급한건, 사우디-중국간 현안을 고리로, 자신을 노골적으로 '인권침해 범죄자'로 취급해 온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명백한 반대를 표명한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8년 자국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를 지시한 의혹으로 미국과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또 미국이 제재대상에 포함한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MOU도 체결했다. ‘페트로 달러’를 대신할 ‘페트로 위안’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결국 사우디는 중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탈미친중’ 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중동의 맹주를 노리는 사우디는 냉전시기 이래 이란과 경쟁하기위해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왔고, 현재도 대미 의존도가 작지않다. 그럼에도 ‘탈미친중’ 노선을 선택한건 미국과의 긴장을 무릅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CNN과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는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수십 년간 지속해 온 사우디와 미국 간 ‘일부일처 시대’의 종식을 시사한다고 7일 보도했다. 에런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사우디는 냉전 2.0 시대를 맞아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디의 전략변화는 사실 미국 중동정책의 근본적 이동에서 기인한다. 미국이 2010년대 들어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Asia)을 펼치면서, 냉전기에 비해 중동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 때마침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확산되고 석유를 대체할 신에너지로 평가받는 셰일가스의 미국내 매장량이 확인되면서 석유와 중동에 대한 경제안보적 관심이 과거에 비해 감소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우디 역시 탈미친중 전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독일의 대중국 선별적 디커플링

또하나 눈에띄는 블록 재균형 현상은 유럽, 특히 독일의 대중국 전략이다. 

탈미친중을 노골화하는 사우디와 달리 전통적으로 중ㆍ러와 균형외교를 펼쳐온 독일은 새로운 대중 전략을 짜고 있는데, 주로 전략적 분야에서 대중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11월 23일 울라프 슐츠 독일 총리는 하원 연설에서 “현 상태를 수수방관한다면 그 대가는 비교불가능할 정도로 클 것”이라며 중ㆍ러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이전 정부의 에너지와 무역 정책을 교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은 2016년부터 6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다. 독일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독일과 중국 간에 2465억 유로 규모의 상품이 거래되면서 중국은 무역액 기준 독일의 1위 교역국 자리를 지켰다. 같은 해 대중 수입액은 약 1430억 유로로 다른 어느 교역국보다 많으며, 대중 수출액은 약 1040억 유로로 미국(1220억 유로) 다음으로 가장 많다. 중국도 독일과 관계를 확대하며 알짜 기업들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독일 한스뵈클러재단에 따르면 2011~2020년 193개에 이르는 중국 자본이 독일 기업 243곳의 지분을 부분 또는 100% 사들였다.

독일 외교부 등이 준비중인 새 대중 전략 문건도 관계 축소와 재조정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2022년은 국제정치질서 재편의 변곡점으로 기록될만하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의 안보 불안과 에너지 위기가 도래했으며, 이는 전세계적 금리 인상과 물가 인상의 경기 침체 공포를 불러왔다.


이 와중에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패권 경쟁자로 상정하고 봉쇄와 압박 전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두가지의 국제적 흐름은 유럽과 아시아 등의 여러 나라들의 역학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전통적 미국 의존도를 탈피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동시에, 독일처럼 전통적으로 미중 균형외교를 추구하던 국가가 중국에 거리두기를 하는 장면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 이란의 일간지 ‘아르만’은 12월10일 1면에 ‘대만 독립은 합법적 권리’라는 기사를 실었다. 중국이 이란의 역내 경쟁자인 사우디와 밀착행보를 보이자, 전통적 우방국으로서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런가하면 2차 세계대전이후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온 스웨덴과 핀란드는 러시아에 대항해 안보를 지키기위해 NATO 가입을 결정했다. 안보를 위해 지켜왔던 중립국 지위가 반대로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180도 달라진건, 2022년의 국제질서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셈이다.     

JTBC

바이든, 미국이 돌아왔다고?  

이처럼 개별 국가들의 블록 이탈과 재편성 양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패권화가 일차적 영향을 미친 측면이 크지만, 유일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고있는 미국의 믿음직스럽지 않은 태도에서도 기인한다고 보인다.

미국은 과거처럼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된 동맹국이나 우호국에 절대적 믿음을 주는데 실패하고 있다. 트럼프 정권 이후 미국의 고립주의 경향은 이제 대세가 된 기류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냉전기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미국이 손해를 봐야 유지되는 체제였다. 미국은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며 동맹국의 성장을 도왔고, 이는 안보적 결속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동맹과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숨기지않고 있다. 지난 시절 안정과 번영이, 냉전의 궁극적 승리가 미국의 양보와 용인의 바탕 위에서 이룩된 성과임을 모를리 없지만, 이젠 짐짓 모른척 하고 있으며, 앞으론 대놓고 모른척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트럼프 정권의 부작용이라는게 많은 사람의 인식이다. 그중엔 당연히 바이든 대통령도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이후 “미국이 돌아왔다”고 호언했다. 국제사회는 미국이 트럼프 시절 생긴 균열의 틈을 다시 매우고, 일말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이전의 국제질서로 되돌아 갈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보다 더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동맹의 불안을 잠재우기보다 망 재편에 따라 어느편에 설지에 대한 선택을 보다 분명히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 일본 등 동맹에게 중국에 반도체 관련 수출을 하지말라고 압박하는건 당연한 풍경이 됐다. 지난 8월 전격적으로 통과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은 동맹인 EU와 한국을 배제하는 차별적 요소를 버젓이 담았고, 시정해달라는 요구에도 크게 변한게 없다.  

정치신인 트럼프는 거칠게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쳤다면, 정치9단 바이든은 노회하게 아메리카 퍼스트를 구현하는 차이가 있을뿐이다. 결국 바이든의 "미국이 돌아왔다" 발언 앞엔 수식어가 빠졌다. 바로 '트럼프의'라는.


[참고문헌]

신경진. “사우디 간 시진핑, 39조원대 구매 계약…‘페트로 위안’ 시대 개척”. 『중앙일보』(2022년12월9일)

노지원. “독일, 중국과 ‘선별적 디커플링’ 모색…전략 부분 의존 낮춘다”. 『한겨레』(2022년12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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