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 D+176
‘심심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왜 사과를 하는데 심심하냐, 성의 없이 그렇게 사과해도 되는 거냐?’
어제 tvN의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현대인들의 낮은 문해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서 낮은 문해력의 한 예로 ‘심심(深甚)한 사과’를 상대방이 할 일이 없어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뜻의 ‘심심하다’로 받아들여 논란이 되었다는 것이 나왔는데, 나는 이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확실히 매일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종종 들어왔던 말이고, 이 단어로 그런 오해가 생길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단어 뜻 조사에서 사람이나 조직, 기구를 다시 짠다는 뜻의 ‘개편(改編)하다’를 정말 편하다는 뜻으로 생각한다는 결과에 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도와주는 매개체는 언어, 바디랭귀지, 더 나아가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핵심은 언어이다. 언어는 일종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규칙이므로 의사소통에는 다른 어떤 매개체보다 언어가 가장 명료하다.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을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 ‘가방’을 떠올리지 ‘과일’을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법이나 규정을 명확하게 해석하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듯이, 언어도 명확하게 해석하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분쟁이 발생한다. 위에서 언급한 ‘심심한 사과’처럼 말이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걸까?
종이에 찍힌 검은 활자보다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 속의 활자에 익숙한 것이 현대 젊은 세대들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와 친구처럼 자랐기 때문에 종이책으로 접하는 정보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정보가 훨씬 많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어딘가에 있어 최악의 문해력에서는 벗어난 듯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속에 있는 정보들은 짧다. 스크롤하면서 보는 화면의 특성상 긴 정보는 쉽게 넘겨버릴 수 있고, Ctrl+F로 원하는 정보만 골라서 볼 수도 있다. 사진과 음성, 영상으로 대체되는 정보들은 문해력을 더욱 낮게 만든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공간인 SNS에서도 긴 글은 쓰지 않는다. 짧은 글과 사진, 영상으로 모든 상황과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긴 문장으로 정갈하게 표현하는 법은 잊게 된다.
나는 언어가 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쓰거나 갈지 않으면 녹슬어버리는 칼처럼 언어 역시 꾸준히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되기 마련이다. 또, 꾸준히 갈아 푸른빛으로 날카로워진 칼은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꽂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언어를 연습하는 것은 긴 글을 바르게 읽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꾸준히 독서하는 습관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