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 69년을 살았다. 우리 나이로는 일흔이니 69번째 맞는 생일은 이른바 칠순이다. 진짜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환갑잔치를 할 때 아버지께서는 “내가 환갑잔치를 할 줄 누가 알았겠노” 하시면서 아주 기뻐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1979년이었으니 40년도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환갑잔치는 아주 거창했고 동네 사람들 모두의 생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의 환갑잔치는 아버님이 병환 중이시라 가족끼리 간소하게 치렀지만 그래도 가까운 일가친척은 다 모였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환갑잔치는 슬며시 사라지고 칠순잔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더니 이제는 칠순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백세시대에 칠순을 기념한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다고 생각해 그렇게 된 것인지 코로나라는 역병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아이들이 아버지 칠순을 그냥 넘기기에는 서운해서 안 되겠어서 이미 호텔을 예약해 놨다면서 아내와 둘이서 호캉스라도 다녀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호텔을 한 번도 못 가 본 것도 아니고 돈만 비싸지 별 의미도 없을 하룻밤을 호사 떨며 낭비하기보다는 가족들이 함께 동해안이나 설악산 같은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가족여행을 하자고 했다. 계획을 짜고 호텔을 예약하고 부산을 떨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 거리두기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예약을 취소하고 대신 고급식당에서 가족이 함께 저녁 한 끼를 먹는 것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그렇지만 저녁식사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가 ‘동거가족’이 아니면 3인 이상은 식사도 함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들 내외와는 동거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식사도 함께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언제부터 생일상도, 그것도 칠순 생일상까지도 나라가 나서서 누구와는 되고 누구와는 안 되고, 가족끼리라도 되고 안 되고를 정하는 나라가 됐단 말인가! 코로나가 동거가족은 알아서 피해 가고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니면 너 잘 만났다 하며 덤벼들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거리두기의 기준이 뭐냐 말이 많지만 누구 하나 딱 부러지게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녁 6시 이후부턴 3인 이상이 자리를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5시 59분까지는 4인이라도 코로나가 피해 가고 6시가 넘으면 3인, 4인은 코로나가 덤벼드느냐는 물음에 어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출퇴근 시간 만원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백화점, 마트 같은 곳은 사람이 북적여도 괜찮고 식당은 세 사람은 함께 밥을 먹어서도 안 된다는 논리는 도대체 누가, 어디서 만든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딸아이만 데리고 식당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 증명서를 들고서 말이다. 세상에! 식당에 가는데 가족관계 증명서에 주민등록등본이라니! 배급제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그것을 내가 할 줄이야... 식당에는 둘이서 온 사람은 드물었고 세 명, 네 명이 다수였다. 그들 또한 가족관계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들고 왔을 것이었다. 아들 내외는 돈만 보내고 얼굴은 비추지도 못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도 누구 하나 항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얌전히 다소곳이 따르기만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책 입안자는 과연 쾌재를 부를 수 있을까? 언론조차도 당연한 것인 양 지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민노총 같은 친정부 단체는 수천 명이 모여서 법을 어기고 집회를 강행해도 별다른 제재조차 받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코로나는 한, 두 달에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어쩌면 감기같이 평생을 함께 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도 산업화가 되면서 부모나 형제가 한 집에서 함께 살기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 생신이나 제사, 명절 등 집안 행사 이외에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그것마저 완벽하게 막고 있다. 작년 이래 추석에도 설에도 제사를 함께 모시지 못했다. 벌초도 함께 하지 못했고 가을 시제도 올리지 못했다. 몇 년을 계속 이렇게 살다 보면 오랜 기간 조상 대대로 면면히 이어오던 미풍양속까지 다 사라지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이 나라에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