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 2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동네 형들이 썰매를 타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형이 소변을 보러 가는지 손에 썰매를 지치는 송곳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썰매를 몹시 타고 싶었던 나는 얼른 그 형의 썰매에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같이 구경하던 한 아이에게 썰매를 밀어달라고 했다.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썰매 타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얼음판을 달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한 형이 썰매를 타고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앞은 보지 않고 얼음판만 보고 달리는 그 형이 곧 내가 탄 썰매를 덮칠 것만 같았다. 급히 손으로 얼음판을 짚으며 ‘밀지 마, 밀지 마’라고 소리소리쳤지만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마주 달리던 두 썰매는 그대로 충돌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충돌이 문제가 아니었다. 얼음판을 내리찍던 예리한 송곳이 얼음을 짚고 있는 내 손등을 그대로 찍은 것이다. 두 썰매는 내동댕이쳐졌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송곳이 손에 꽂힌 채로 덜렁거렸는지, 손등에서 빠져 달아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손등은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도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송곳이 내 손등을 찍었다는 엄청난 사실에 정신이 나갈 정도로 겁이 났고 무서웠다. 그런데도 울지도 못하고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 안방에 이불을 덮고 드러누웠다. 아버지한테 혼이 날까 무서웠던 것이다. 점심을 먹으라고 깨웠지만 졸려서 그냥 자겠다고 하고는 오후 내내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여전히 손은 아프지도 않았고 피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무서움은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누워만 있다가 너무 무서워서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숙모(아지매라고 불렀다)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아지매는 즉각 엄마에게 달려갔고 엄마는 서둘러 나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이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서였는지 엄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3Km 그 먼 길을 이불로 감싼 나를 업고 뛰다시피 걸었다. 병원에서는 주사를 놓고 약을 발라주었다. 간단히 치료가 끝나자 엄마는 저녁밥도 먹지 못한 채 또 나를 업고 어두운 밤길을 집을 향해 걸었다. 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다. 손등은 작은 흉터만 남기고 깨끗이 아물었다.
초등학교 시절, 초여름이 되면 학교가 끝나는대로 집으로 가 소를 끌고 산으로 가야 했다. 소에게 풀을 먹이고 소먹이 풀을 베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오전, 오후 두 차례 소를 끌고 산으로 갔다. 늘 여러 친구들과 함께였다. 4, 5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친구들과 어울려 소를 끌고 산으로 가 소는 내팽개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그도 지루해서였는지 혼자 커다란 바위에 올라갔다. 주변에 널린 작은 바위보다 훨씬 큰 그 바위에 아이들은 올라가 공기놀이 같은 것을 하면서 놀기를 좋아했다. 그 바위는 주변의 다른 바위보다는 훨씬 컸지만 높이는 불과 3~4m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위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혼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바위 가장자리에 서서 먼산을 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내 등을 확 떠미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대로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머리가 밑을 향한 채로 떨어진 것 같았는데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두 발이 바닥을 딛고 서 있었다. 발바닥이 굉장히 아팠다. 그뿐이었다. 어디 한 군데 다친 데도 없었다. 떨어지자마자 ‘누가 날 밀었어?’ 외치며 바위 위를 살폈지만 바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민 것이 분명했는데... 무서웠다. 친구들 모두 내 말을 듣고 무섭다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후로는 그 바위 주변을 가기조차 싫었다.
2002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시장 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당 경선을 실시했다. 다섯 명의 후보가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마치고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을 치렀는데 기이하게도 현직 시장과 내가 같은 표수를 얻게 되었다. 처음 개표에서는 내가 한 표 차이로 졌다. 그런데 재검표 과정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한 표, 한 표 철저히 재검표를 한 결과 한 표의 무효표가 나온 것이다. 그 무효표를 제외하니 나와 당시 시장은 같은 표를 얻어 재선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표에는 동그라미 기표 안에 들어 있어야 할 ‘사람 인(人)’ 자 표기가 없었다. 당연히 그 표는 무효처리가 되고 재경선을 실시하게 되었다. 두 명의 후보는 사퇴를 하고 세 명의 후보가 다시 치른 재경선에서는 내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기표 기는 동그라미 안에 人이 표기되어 있어 그 기표 기로 기표를 하면 당연히 동그라미와 함께 人이 기표가 된다. 그런데 유독 한 표만이 동그라미 안에 人이 빠져있었다. 어떻게 딱 한 표만이 人자 표시가 없었을까? 무슨 조화였을까?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일까?
당 시장 후보 경선에서 나를 찍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때문에 내가 당선될 수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찍지 않았거나 경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는 경선에서 떨어졌을 것이고 시장에 당선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차 경선이 끝났을 때 한 분이 내게 말했다. 일을 보러 나갔다가 경선 투표 시간에 늦을 거 같아 택시를 타고 경선장에 도착해 허겁지겁 기표소로 달려갔을 때가 오후 여섯 시였고 간신히 시간에 맞출 수 있어 투표를 할 수 있었다고. 그만큼 경선은 극적이었다.
썰매를 타다가 손바닥을 날카로운 송곳에 관통당하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어느 곳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뼈와 살, 수많은 핏줄과 신경이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손이 굵은 송곳에 순식간에 관통을 당했는데도 어느 곳 하나 상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적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어른들은 조상님이 도왔다고 했다.
바위에서 떨어졌을 때도 뒤에서 누군가가 민 것이 분명했는데 아무도 민 사람은 없었다. 평소 나였다면 1, 2초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똑바로 설 수가 없었다. 운동신경이 둔해 뜀틀조차 제대로 뛰어넘지 못한 내가 아니었던가! 몸을 똑바로 세우지 못하고 머리부터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선 투표에서도 딱 한 표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무효표로 처리되어 재경선을 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현실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지극히 어려운 일들이 거듭되면서 그것들은 내게 아주 강한 믿음을 주었다. 무엇인가가, 초자연적인 어떤 힘이 나를 돕고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은 언제나 내게 어떤 어려움도,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 믿음은 위대한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여 그 이후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내게 큰 힘을 주었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