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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ul 23. 2023

티없이 맑고 예쁜 다민이

다민이는 우리 부부의 단 하나뿐인 손녀딸이다. 다민이는 매일 아침 엄마 손을 잡고 걸어서 어린이집에 간다.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는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엄청 떼를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활짝 웃으며 엄마에게 바이바이까지 하는 다민이다. 어린이집을 다닌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민이는 벌써 친구가 여러 명이다. 연호는 다민이가 좋아하는 남자 친구다. 연호 엄마가 어느 날 연호에게 장난스레 물었다고 한다. ‘연호는 다민이가 좋아 엄마가 좋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민이가 더 좋아’라는 연호의 대답에 연호 엄마는 거의 멘붕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연호 엄마로부터 그 말을 들은 다민이 엄마, 아빠도 다민이에게 물어보았단다. ‘다민이는 엄마, 아빠가 좋아, 연호가 좋아?’ 다민이 또한 망설임 없이 ‘연호가 좋아’라고 대답하더란다. 다민이 아빠의 상심 또한 엄청났다. 뻔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면서 그래 묻기는 왜 물어? 지금도 가끔 다민이에게 누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단다. 그래도 그 어린 것이 미안함을 아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들릴 듯 말 듯 모기소리로 대답한단다.    

얼마전 다민이가 두 돌이 되어갈 무렵 다민이도 볼 겸 생일 선물도 사줄 겸 우리 부부는 다민이네 집을 찾았다. ‘할머니가 왜 안 오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고있다는 말을 들은 다민이는 혼잣말을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 다민이가 우리 내외가 집안으로 들어가는데도 달려올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쌩긋이 웃기만 한다.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다민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백화점은 한산했다. 어린이 옷을 파는 점포에서 이것저것 옷 구경을 하고 있다가 다민이가 보이지 않아 어디 갔나 찾고 있는데 다민이 엄마가 웃으며 옷이 잔뜩 걸린 매대 밑을 가리켰다. 매대 밑 옷가지 속에 다민이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매대 가까이 다가가자 다민이 엄마가 ‘응가’를 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했다. '응가'를?  아직 이 가게는 개시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매장에서 뭐라고 하면 어쩌려고? 다민이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앉은자리 가까이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렇게 대사를 치르고 휴게실에 가서 뒷정리를 마친 다민이는 엄마가 골라 입혀준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으로 냅다 달려가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옷매무새를 한참 동안 살피던 다민이가 옷을 입은 채로 혼자서 매장을 슬며시 벗어나는 것이었다. 누가 그 옷을 뺏기라도 할까 그러는 걸까?     

저희 좁은 집에 살다가 드넓은 우리 집에 오면 다민이는 살판이 나는 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 쑥스러움은 잠시뿐 이내 이리저리 쿵쾅거리며 뛰어다니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물어보기 바쁘다. 겁 없이 혼자서 이 층 계단을 기어 올라가기까지 한다. 뒤따라 가면서 잘 살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다민이 손을 잡고 이 층 계단을 올라가면 금방 또 아래층으로 내려가자고 한다. 그리곤 또 올라가려고 하고.

다민이는 할아버지 바라기다. ‘하부지, 하부지’ 하며 할아버지 손을 잡고 이리저리 끌기도 하고 무릎에 앉아 재롱을 떨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저를 안고 앉아 있으면 할아버지 얼굴을 쳐다보며 활짝 웃다가 잠시 딴짓을 하고 또 할아버지 얼굴을 쳐다보고 활짝 웃고... 엄마, 아빠도, 할머니도, 고모도 모두 그 모습이 이뻐서 손뼉을 치고 좋아라 하니 저는 더욱 신이 나는 거겠지. 할아버지가 욕실에서 양치라도 하고 있으면 문을 열고 빤히 쳐다보며 양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 기특한 아기이기도 하다.

일전에 다민이네가 우리집에 왔을 때였다. 밖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까페에 갔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금방 그칠 것같지 않아 집에 가서 자동차를 가져와야겠다 생각하고 까페에서 우산을 빌려 들고 집으로 갔다가 한참이 지나 차를 몰고 다시 까페로 돌아오니 까페 앞에 다민이가 할머니와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자 말자 다민이가 '하부지, 하부지' 하며 울음을 터뜨리며 밖으로 달려나가 어쩔 수없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밖에서 계속 훌쩍이며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다민이가 그치지 않는 비를 바라보다가 '비가 주룩주룩 내리네' 하며 울음은 계속 하더란다. 다민이가 커서도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고 따를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 저렇게 좋아하고 따르니 그저 귀엽고 기특할 따름이다.

저의 집에서 다민이는 가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때론 고모나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해 달라기도 한단다. 막상 영상으로 제 엄마가 전화를 연결시켜 주면 다민이는 인사도 하지 않고 딴짓을 하기 일쑤다.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저 멀리 달아나기까지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아직은 되지 않으니까 그러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다민이의 어휘구사력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색깔은 거의 아는 눈치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은 기본이고 보라, 연두, 주황까지 꿰고 있으니 말이다.

다민이는 특이하게 야채를 좋아한다. 특히 시금치를 아주 좋아한다. 시금치를 무쳐주면 입안에 시금치를 잔뜩 머금고 있으면서도 손으로 시금치를 집어넣기 바쁘다. 그러니 아내는 다민이에게 갈 때면 시금치 무침을 만들어 가지 않을 수 없다. 다민이는 샐러드도 아주 좋아한다. 샐러드를 먹다가 혹 갓이나 겨자 나물을 씹기라도 하면 ‘초록색이 매워요’ 하며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뱉어내지도 않고 오물오물 잘 씹어 먹는다. 다민이는 밥도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하고 국수도 좋아한다. 다민이가 싫어하는 건 뭘까?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다민이는 ‘음, 맛있어!’를 연발한다. 그때의 다민이 말투나 표정은 귀엽기 그지없다. 그런 먹을 걸 좋아하는 다민이지만 몸매는 날씬해 엄마, 아빠 걱정을 덜어주고 있는 것 또한 기특한 일이다.

어린이집 가는 길 잔디밭에 핀 민들레꽃 냄새를 맡으며 ‘아, 향기로워’ 하며 코를 벌름거리는 다민이, 수족관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거북이를 보고는 ‘거북이가 헤엄치고 있네’ 하며 거북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다정다감한 다민이! 엄마, 아빠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엄마, 아빠가 보고파요' 하며 찾기 바쁜 정많은 우리 다민이, 이런 다민이를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민이는 호기심이 아주 많은 아기다. 어른처럼 뒷짐을 지고 이것저것 살피며 혼자 돌아다니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게 뭐지?’ 혼잣말을 하며 살피기도 한다. 때로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도 ‘다민이 노래하네, 같이 할까?’ 하면 방긋이 웃으며 그만 노래를 멈추고 마는 부끄럼 많은 아기이기도 하다. 다민이는 달리다가 넘어져도 울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고 일어나 손을 툭툭 털고 제 할일을 하는 대견스런 아기이다.

이렇게 재롱을 부리고 시키는 대로 하는 때가 제일 이쁠 때라고 한다. 좀 더 크면 말도 잘 안 듣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이쁜 우리 다민이지만 이제 커가면서 속을 썩일 때도 있을 것이다. 말을 하지도 않고 짜증만 낼 때도 있을 것이다. 그건 다민이가 컸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크게 나쁜 일일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다민이가 그렇게 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다민이가 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또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우리 부부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이룰 수 없는 욕심보다 다민이가 그저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면 좋겠다. 좀 더 욕심을 보탠다면 항상 웃는 다민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다민이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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