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신문 첨성대 칼럼 2024년 10월 31일 게재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인 덴마크에는 애프터스콜레라는 독특한 교육 제도가 있다. 전통적인 교육시스템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 보니 학생들에게 좀 더 유연하면서 개인화된 학습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교육 모델이다. 애프터스콜레는 청소년의 전인적 발달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특히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이 기간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하고, 미래의 진로를 탐색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역시 교육 선진국인 핀란드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와 68혁명 이후 교육의 대변혁을 일으킨 독일 같은 나라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개발해서 시행하고 있다. 집단적인 공교육을 기본적으로 시행하면서 이런 여유를 두고 있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이유에서 시작된다. 집단이 시행하는 공교육은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 획일적인 방식은 개개인의 다른 성향을 모두 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피 터지는 경쟁을 통한 교육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다. 물론 적어도 겉으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우리 주위에 제법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생각만 그럴 뿐, 학부모의 입장으로는 대다수가 인정하는 현실에 자연스레 굴복하고 경쟁체제에 자녀들을 내맡기게 된다. 내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적이 좋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아이보다 성적이 더 앞설 수 있을까에 집중하게 된다. 그 이유, 역시 단순하다. 우리 스스로 획일화에 적응이 된 교육을 받아온 세대이고, 모난 돌처럼 튀어나오는 것이 스스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각자의 흥미와 적성이 다른 모두가 똑같은 내용의 교육을 획일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이어서 직업 성향이 다를 수 있는 모두가 똑같은 진로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현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세상은 더 다양해지고 급속히 다원화되어 가고 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모두가 향하고 있는 진로의 문은 자연스럽게 좁아지게 된다. 그 좁아진 문을 향해 모두가 획일적으로 나아가는 흐름은 경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그로 인해 교육은 더욱더 획일화되는 악순환이 지속한다.
실제 핀란드에서는 ‘모든 학생의 성공’이라는 핵심적인 가치를 가지고 교육시스템을 운영한다. 정신적인 측면과 공동체적인 측면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가난한 나라 부탄이 ‘모두의 행복’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국가의 목표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모든 학생의 성공이라는 개념은 학생들이 각자의 능력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개념이다.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이 크든 작든 한 학생의 성공을 자신이 바라는 진로에서, 자신이 설정한 목표만큼만 성취하여도 성공을 했다고 본다. 그러면 경쟁이라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핀란드의 교육에서 추구하는 ‘모든 학생의 성공’이라는 목표는 부탄이 추구하는 ‘모두의 행복’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경쟁과 성장을 중시하면서 효율성을 지향하는 것이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이 단순한 사실을 무시하기가 쉽다. 사람의 다양한 성향은 모두가 공교육에 적합하게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자녀 중의 일부에게는 학교생활에 부정적이거나,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분명히 생긴다. 그러면 그들에게 노력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탐색해 봐야 한다. 청소년의 진로 탐색과 이에 관한 상담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의 흥미나 적성보다는 어떻게든 공교육 시스템에 적응을 시켜 경쟁에 유리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모의 고집대로 간다면 결과는 명약관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은 자녀들에게 대안학교나 탈학교가 탈출구가 되고 있다. 공교육에서의 탈출이 현실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체험과 상담을 곁들인 진로 탐색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법도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덴마크의 교육시스템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진 꿈틀리인생학교의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괜찮아, 앨리스’가 11월 13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미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서 수십 차례의 왕성한 시사회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자녀들의 진로 고민에 일찍 공감대를 열어가는 부모와 어른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림 출처 : 포토샵에서 AI 기능을 활용해 생성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