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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Dec 22. 2020

어린이를 지켜주세요

어린이라는 세계_김소영, 사계절, 2020


김소영 선생님의 글을 처음 본 것은 내가 자주 가는 카페의 한 게시물에서였습니다.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 김소영 선생님의 블로그 글을 옮겨왔기에 읽어봤었는데, 아마도 글을 쓴 선생님의 말투에 반했던 것 같아요. 그길로 블로그를 찾아가 이웃으로 추가하고 게시글들을 읽어 나갔습니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은 행간마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녹아있었어요. 저는 눈물을 조금 흘리면서 글자들을 읽었습니다.



어린이


어린이라는 세 글자는 연지와 함께하면서부터 제게는 특별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라는 글자와 연지는 제가 같은 의미로 다가왔기에 어린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연지를 떠올리게 되었거든요. 아마도 연지가 청소년이 될 때까지 이 증상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은 김소영 선생님이 운영하는 독서 교실에 다니는 아이들과 놀이터나 길에서 혹은 전시회에서 만났던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나눴던 대화에서 발견했던 공감과 이해 그리고 사랑이라는 마음을 문장으로 엮어 만들어진 책처럼 느껴집니다. 동심이 녹아있는 책이라 그런지 어느 쪽에서 보아도 사랑스러운 책인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서 봤던 글이나 보지 못했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네요.


선생님의 글들을 보면서,

'아! 우리 연지가 김소영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선생님이 운영하는 독서 교실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본 적도 있었어요. 아마도 집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곳인 걸 확인했다면 연지와 함께 가서 등록을 하고 올 것이 틀림없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알아채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눠 줘요!”는 ‘곱고 바른 말’이고, “같이 놀자” “반겨 주자”는 ‘상냥한 마음씨‘다. 사전 뜻 그대로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메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p.37)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p.41)


사회생활이란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 가는 대로 해서는 안 되고, 보고 배워서 일부러 그렇게 해야 한다. (p.43)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다. 좋은 친구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나 기웃거리는 요즘이다.(p.46)


"아동을 놀리기 좋은 상대로 바라보는 시각은 시청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세이브더칠드런)라는 지적을 읽고, 뒤늦게나마 공론화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나는 방송을 만든 어른들이 어린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할 생각이 있었다거나 '아동의 공포심을 조장하고 이를 재밋거리로 소비'하려는 적극적인 의도를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그런 악취미를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실한 마음에서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든, 어른들은 어린이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을 것이고, 시청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런 장면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극적인 연출보다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p.226)






배시시 웃거나 깔깔대다가도 휴지로 눈을 툭툭 두드리면서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가 중간중간 눈앞에 보이는 연지를 볼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간혹 아이들이 쓰는 용어를 알아채지 못할 때는 연지의 도움을 얻어 가며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느라 힘이 들 것 같아요. 유치원에 입학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굳이 가르치지 않더라도 눈치코치로 위기를 잘도 모면하는 걸 볼 때는 '크느라 고생이 많구나. 순수하던 마음에 조금씩 먼지가 내려앉겠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그런 것도 나이가 차면서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있는데 괜한 걱정을 하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늘 마음이 쓰이는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고민도 지켜주는 방법도 책 속에 녹아 있습니다.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장면을 보며, 양육하는 동안 실수했던 제 모습을 보며 반성도 해봅니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을 연지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해봅니다.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동의 의견을 잘 듣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유엔 아동 권리 협약 12조, p.246)  


옳소!


"국민 여러분, 오늘 하루 어린이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들은 주변의 어린이를 살피고 돕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어린이를 보호합시다."


옳소!



어린이라는 세계는 정중하고 사려 깊고 현명함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아이를 보며 제 행동과 말투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아채고, 또 그러한 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며 아이가 올바로 자랄 수 있도록 엄마로서 모범을 보이려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빈틈을 보여서 아이를 당혹스럽게 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며 어린 시절 저를 다시 사랑하고 보듬어 봅니다.


어린이 시절을 보내온 어른들은 자주 잊게 됩니다. 어린이와 무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신중하고 용감했던 우리의 세계입니다.



어린이를 지켜야 합니다.



http://aladin.kr/p/dy4yL



김소영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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