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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Jul 02. 2021

먹어도 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학창 시절,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얼마 후면 할머니가 꼭 해주시는 별미가 있었다. 고춧가루를 팍팍 넣은 국물에 고사리, 대파, 고기 등 각종 재료가 듬뿍 들어간 그 음식은 언뜻 보면 육개장과도 비슷해 보였다. 칼칼하지만 담백했고, 푹 익혀진 고기와 야채가 한데 어우러져 초딩 입맛이었던 초딩 시절에도, 꽤 맛있다고 느껴졌다.


그 음식의 정체를(?)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할머니 댁과 우리 집은 걸어서 5분 거리라 종종 심부름을 가기도 하고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는데 그날 역시 점심 먹으러 오라는 부름에 별생각 없이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조그맣고 동그란 나무 반상 위에는 갓지는 밥과 푹 삭힌 김치, 몇 가지 나물 종류가 놓여있었다. 이제 더 이상 뭔가를 놓기엔 좁아 보였는데 할머니는 큰 대접에 국을 한가득 푸시더니 손녀들 밥그릇 옆에 한 그릇씩 놓아주셨다.


"몸에 좋은 거니까 많이 먹어"


매년 여름마다 연례행사처럼 먹는 음식이니 만큼 별다른 생각 없이 수저를 들었다. 그런데 언니만은 새삼스럽게 국물 속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물어봤다. 할머니는 잠깐 뜸을 들이시더니 돼지고기라고 답하셨다.


"개고기지? 저 안 먹을래요."

"몸에 좋은 거야. 먹어봐."


할머니가 매년 여름 해주시던 음식이 보신탕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 세 자매를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당시엔 보신탕을 먹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집안 어르신들과 식사를 할 때 어쩌다 한 번씩 먹기도 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개고기는 '하나의 음식문화일 뿐이다'라고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개고기를 찾아 먹진 않지만, 남이 먹는 걸 굳이 반대는 하지 않는, 따지고 보면 개고기 찬성론자라고 할 수 있다. 소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으면서 개고기는 먹지 말라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영화 <누렁이>에서 식용견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니 개고기를 먹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스스로 고민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누렁이> 속 한 장면


영화 속에서는 우리나라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식용견 관리 실태를 다루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식용견'이라는 운명을 타고 난 개들은 한 평 남짓한 좁은 우리에 온갖 배설물과 뒤섞여, 사람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개들의 눈빛이 살려달라고, 제발 여기서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도살하는 장면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긴 막대를 개의 주둥이에 넣어 몇십 초 동안 고통을 준다. 식용견은 몸부림치다 맥없이 쓰러진다. 평생을 더러운 곳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살다가 마지막 순간에도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이게 과연 옳을까? 떳떳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일까?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부터라고 한다. 평민들도 즐겨먹었다 하니 값비싼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기 힘들었던 백성들이 집에서 키우는 개를 잡아먹기 시작한 게 보신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전통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이니 만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먹을 게 넘쳐나는 마당에 굳이 개를 잡아서까지 먹어야 하나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여든이 넓은 연로하신 우리 할머니가 옛날처럼 손녀를 위해 보신탕을 끓여주신다면 나도 거절하지는 못할 것 같다. 개고기에 대한 문제는 정답이 없다. 개인의 선택만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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