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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씽 Feb 16. 2023

아주 특별한 돌잔치에 함께하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늦장가를 든 친구의 쌍둥이 채리 채은이의 돌잔치에 다녀오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날 돌잔치는 여러모로 뜻깊었다. 

사회복지사 부부 아니랄까 봐 행사 기획하듯 짜놓은 돌잔치 프로젝트에 대한 궁금증도 컸지만 장애가 있어 더 마음이 쓰인 채리와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전문지에서 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면접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편집장의 말대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의 슬픔에 매몰되면 일을 할 수 없기에 일정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그게 안 되는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장애아를 둔 부모님과의 만남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부터 흘러나왔다. 

장애아를 출산했다는 이유 때문에 쫓겨날 지경에 놓였다거나 돌봄의 가중으로 인해 죽음 직전에서 돌아오고, 가족이 해체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관찰자의 위치를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장애아 출생을 숨기는 이야기가 드라마에 소재로 쓰이던 시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과 울타리 안에서조차 눈총 받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 옆에서 열심히 펜대를 굴려봤으나 내 힘은 미약했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머리를 깎고 밥을 굶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  


그렇게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고, 쌍둥이 조카가 생겼다는 기쁨과 동시에 이중 한 명이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 만난 엄마, 아빠 얼굴이 떠올라 솔직히 걱정됐다.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가정이 아니라 이해나 어색함은 덜하겠으나 두렵지 않을까? 깊은 신앙심이 있지만 누군가를 원망하면 어떡하지?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한 지원이나 치료서비스는 어디서 받으면 좋을지 알아보기도 했으나 내딴에는 배려한답시고 애써 모른 척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 생각은 기우였고, 누구보다 씩씩하고 당당하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고, 사진 속 내 친구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은 한없이 예뻤다. 


엄빠가 기획하고, 많은 지인들이 함께 꾸민 돌잔치는 생각보다 더 감동이었다. 채리, 채은이의 첫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가득 찬 홀 한쪽에는 연대의 마음을 담은 장애인부모연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의 홍보부스가 마련됐고, 본 행사 전 강연도 진행했다. 특히 함께하지 못한 이를 배려한 인터넷 생중계도 진행한, 듣도 보도 못한 특별한 돌잔치가 연출됐다. 


행사도 감동이었으나, 개인적으로 크게 인상 깊었던 건 답례품으로 전한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인 소소한소통의 백정연 대표가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생각하는 장애와 척수장애가 있는 남편과 함께 살며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싹트는 건 오해 때문이고, 이건 만나지 못함에서 기인함이 크다. 

일상에서 장애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은 어느 정도 편견의 마음을 갖고 돌잔치를 찾았으리라.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을 보고, 강연을 듣고, 리플릿을 읽고, 답례품으로 받은 책을 읽는다면 자신들의 편협함을 되돌아 보게 되지 않을까. 


구호와 운동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공중파 드라마 몇 편이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실금을 냈듯 이날 채리, 채은이의 돌잔치는 주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고 믿고 싶다. 

채리, 채은이가 성인이 됐을 땐 ‘장애’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이 되길 나도, 당신도 조금 더 애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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