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MBA를 가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처음부터 홍콩을 염두해뒀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학교를 생각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 점수나 스펙이 부족해서 목표를 수정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콩으로 유학을 결정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목표했던 바는 100% 달성했다.
나는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 케이스였다.
맨 처음 MBA를 결심했던 것은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던 2010년이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MBA설명회를 들으면서 GMAT공부를 시작했고, 원하는 점수를 받게 된 것은 2013년이었다. 그리고 최종 지원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야 할 수 있었다.
거의 만 4년 가까이 준비를 했는데, 정말 비효율적이긴 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진득하게 유학만 준비하기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2011년, 인생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을 했고, 2012년에는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워낙에 야근과 회식이 많은 광고 대행사에 다니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MBA 준비하는 직장인 중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어쨌든 다 변명일 뿐이고, 그렇게 4년 여의 시간동안 준비해서 결국 원하는 점수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원 준비를 하다 보니, 과연 2년 여의 시간과 2억 정도의 큰 비용을 투자해서 미국의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ROI 측면에서 옳은 선택인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 내가 MBA를 하는 주요 목표는 물론 학위 취득도 있겠지만, 1~2년 정도는 현지 회사에 취업해서 글로벌 경험을 쌓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미국에서 괜찮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비자 문제도 있고, 특히나 마케팅의 경우 상대방을 말과 글로 설득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문제도 컸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이었기 때문에 와이프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부담이었고, 와이프와 같이 가는 것은 더더욱 부담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홍콩 대학교에서 한 번 자신들의 MBA 코스에 지원해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의사를 물어보는 이메일이 한 통 왔다. 미국 학교와 달리 지원 비용도 거의 없었고 인터뷰도 한국에서 바로 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홍콩 대학교에 대해서 정보를 탐색해보기 시작했고, 검색해보니 학교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기간도 1년 정도로 짧았고, 거리도 3시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한국으로 왔다 갔다 하기에도 편했다. 저가 항공사로 인해 비행기 값도 쌌다. 외국인에 대한 비자도 상당히 유연했고, 홍콩대학교를 졸업하면 1년 동안 취업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비자도 바로 나온다. 거기다가 홍콩은 아시아의 비지니스 허브로서 많은 글로벌 회사들의 아시아 지역 본부 및 헤드쿼터가 있다. 중국도 가깝고, 사실 홍콩인들은 받아들이기 싫어하지만 1999년 이후로는 아예 중국에 편입되어 중국 문화 및 비지니스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반면에 언어는 영어가 공용어이니 금상 첨화였다.
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의 몇 개 학교에서도 입학 허가서도 받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홍콩 대학교를 선택하게 되었고(홍콩 대학교에서는 장학금도 줬다), 졸업 후에는 목표한 대로 현지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1년 9개월 정도 근무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감사하게도 아기가 생겨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호화로운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인생에서 이렇게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남는 시간을 통해, 지난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정확하게는 2016년 7월부터 2019년 3월까지, 2년 9개월 동안의 홍콩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내가 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하늘에서 충분한 인생 공부를 시켜주시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던 지간에 쉽게 됐던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재밌있는 추억이자 술안주거리가 되었지만, 그런 다양한 경험과 생활 팁들을 정리해 놓으면 나중에 추억을 곱씹기에도 좋고, 누군가에게는 작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