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된지 1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나도 내가 좀 단단해질 줄 알았다
2013년 12월 인턴생활을 시작했고, 2014년 5월 정규직 사원이 되었으니 올해로 딱 직장인 타이틀을 단 지 10년이 되었다. 내성적이지만 내성적으로 보이기 싫어서 더 단단한 척, 더 괜찮은 척하며 정신없이 지나간 10년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1년은 회사 가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처음 보는 일인데 시간 안에 끝내야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상사에게 물어봐도 되는 건지, 이 클라이언트는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을 못하겠는데 계속 이메일은 들어오는 이 모든 일들이 스트레스였다. 해서, 처음 1년간은 매일 아침 출근 버스길에서 '버스에서 내리다가 다리가 다쳤음 좋겠다. 그럼 병원간다 하고 회사 안갈텐데' 하는 생각들을 늘 했었다. 실수였는지 뭘 못했는지 뭔가 늘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서, 이름을 '죄송'으로 개명하는게 빠를 것 같다 생각하지 했던 1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3년차에는 뭔가 내가 다 아는 줄 알았다. 그 시절은 그냥 이불킥이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뭣도 모르면서 오만방지하기 그지없던 시절이라..그 시절 내 선배들은 나를 어떻게 받아주셨던건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연락 받아주는게 고마울 정도)
4-6년차엔 , 이전에 하던 일의 연장선이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던 것 같다. 매일 이게 맞나 싶다가도 옆 자리 과장에게 지기 싫어서 이 악물고 밤새면서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것 같다. 사실 난 숫자와는 1도 인연이 없는 분야를 전공했고, 2-3년차까지는 굳이 숫자와 친해지지 않아도 되었었지만, 이젠 숫자를 알아야했기에 그냥 뭣도 모르고 그냥 내립다 일했었던 것 같다. 요령은 커녕, 그냥 그 날 그 날의 일을 테트리스처럼 쳐 내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7-9년차엔..이전에 하던 일과는 아예 다른, 어찌보면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하게 되었다. 근데 이 시기에는 나이도 조금은 먹고 이제 내 한계를 알고 내가 어디가 모지란지 아는 시기가 되서 그런가... 4-6년차때와는 다르게 모든게 무서웠다. 겁이 났다. 내 한계를 내가 알기에, 내가 못 해낼까봐. 어찌어찌 해 내더라도 백프로 알고 하는게 아닐까봐 겁이 났다. 하지만 징징거리고 싶어도 뒤를 돌아보면 이젠 그걸 들어줄 선배도 동료도 점점 줄어져가는게 현실이였고, 오히려 나에게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에 정말 '어쩔 수 없으니까' 알아야했고, 아는 척 해야했고, 괜찮은 척 해야했다. 상사 복은 없어도 동료복은 매우 많았어서 (감사히도), 이런저런 어려운 시기에 함께 잘 으쌰으쌰해서 어떻게 잘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어찌저찌 어영부영 10년이 되었다. 1-2년차엔 이쯤 되면 모든게 안정적일 줄 알았다. 일도 웬만큼 해서 손에 익었겠다 뭐 네트워크도 있겠다 짬도 있겠다, 뭐 어려운 게 있을까 싶었다. 근데, 10년차가 되고 뒤를 돌아보니, 일에 대한 숙련도는 1년차에 비해선 나아졌겠지만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의 강도는 다시 1년차때로 돌아온 느낌이다. 3년전까지만 해도 Specialist 로서 내 분야만 잘하면 인정 받았고, 2년전만 해도 Specialist 치고 Generalist 의 업무도 잘 하네 하며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360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Generalist 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되었고, 내가 그럴 그릇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맘 졸리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근데 가장 문제는... '나'였다. 아니 현재 진행형으로 '나' 다.
2~5년차 때의 나의 마음가짐이였다면, 이딴거 내가 다 이겨먹을거다 하고 달려들어서 했을 것 같은데..이제는 일도 일이거니와 그에 딸려오는 '정치'싸움에 이골이 났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뭔가 반짝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이디어와 전략이 아무리 좋아도 그 사람이 회사가 원하는 소위 '스타'가 아니거나, 회사의 뜻과 맞지 않거나, 그 누군가가 이상한 정치모략에 놀아났다거나, 잡고 있는 동아줄이 금동아줄이 아니라면 채택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회사의 사정으로 원하던 원치않던 내가 회사와 이별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들을 너무 많이 봐왔고, 너무 많이 봐버렸다. 그리고 이런 정치 싸움 덕분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팀원들이 이 조직에서 아첨꾼이 아닌 정상적인 인간체로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부분들에 대한 생각이 더더욱 또렷해지며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좀 늦게 알긴 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더 이상 나는 나를 빛나에 해 주었던 '총기'와 '독기'가 이미 많이 빠져버린 뒷방 늙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지도 않은 요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량은 적어질 줄 알았는데..웬걸..더 많아졌다. 물론, 어찌저찌 하긴 한다 - 돈은 벌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전만큼 업무를 해냈을 때 희열보다는..'그래. 오늘 이정도 했으니, 내일 뒷탈을 없겠다', '오늘은 그래도 어제보다는 사고 덜 터져서 다행이다' 이런 어찌어찌 하루를 보냈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전히 순두부보다 더 잘 부러지는 단단함과 거리가 아주 먼 것이 내 현실이고, 그 현실을 들켜버리면 바보 소리 들을까봐 더 억센척 하면서 심장 박동수 120은 거뜬히 넘겨버리는 쫄보의 삶을 살고 있다는게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2013년, 2014년의 나와는 다르게 지금은 회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회사와 회사 업무가 내 개인 삶의 영광을 가져오지 않는 다는걸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또, 나에겐 지켜야할 가족도 있고, 지키고 싶은 나만의 삶이 있고, (아직은) 언젠가 일하고 살지 않아도 될 시기가 오겠지 하는 헛되지만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꿈도 있다.
지금 내가 지켜야하고 내가 지켜나가야할 사람들, 그리고 지켜야할 것들에 대해 지킬 힘이 있으려면 아직은 회사가 '주시는' 월급과 기타 부수적인 도움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러니 저러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순두부적인 면도 무서운 부분들도 계속 이렇게 모른척하고 아닌척하면서... 해쳐나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10년 맘 졸였지만 어찌어찌 견뎌내왔으니, 다음 10년도 어찌 어찌 살아지겠지' 하고 있다 ㅎㅎ(이래도 될까 싶지만 그러고 있다..)
(도대체, 30년 근속하신 우리네 부모님들은 어떤 세월을 견뎌오신걸까..더더욱 그분들이 대단해보이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