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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온 Oct 31. 2024

말의 '톤'과 '투'의 무게에 대해서

가끔은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톤이었는지'가 중요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따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지에 대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 생각하고 믿었었다. 하지만 최근 몇몇 일을 보고 겪으며 내 말의 '톤' 또한 내가 한 말과 비슷한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최근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관찰할 마음도 없었지만, 자꾸 거론되다보니.. 보게 되어버린..),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한다고 해서, 겉으로 느껴지는 말이 예쁘다고 해서, 안의 의미가 예쁘고 아름다울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의 톤'과 '말의 투'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항상 말을 딱 맞는 타이밍과 상황에 맞는, 심지어 말도 멋지고 물 흐르듯 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우직하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 내가 비록 일은 1을 했어도, 100으로 부풀려서 말한 사람을 회사에서는 더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상황들을 매우 자주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흐드러지게 잘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아직도 부러워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본인의 강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그 말, 특히 그 말의 '톤'으로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타인은 가치 없다는 사람이라는 말을 매우 쉽고 매우 자주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이후로는 그 부러움의 강도가 많이 내려간 상태다.


(물론, 말 잘하는 성향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럴것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절대 일반화를 시킬 마음은 없다. 다만, 내 주변에서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의 패턴을 보이다 보니, 내 주변에서는 조심해야겠다..라는 개인적 다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대화를 내용이나 대화에 사용된 단어들 보면 이 보다 더 고무적이고 희망적이고 따뜻할 수 없다. 다만, 그런 아름다운 단어를 쓸 때 그 사람의 톤을 보면 '비꼬거나', '넌 역시 나보다 못하구나', '아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너가 가져가, 당연히 내꺼지' 하는 뉘앙스가 너무도 강력하게 드러났다. 처음엔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줄 알고, 내가 꼬였나 혹은 내가 자존감이 없다 없다 이제 이런 것까지 힘들어하고 질투하 하고 자책하고, 내 머리 속 회로가 고장났다고 나를 의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 몇몇 동료들이 그 사람의 말투, 말의 톤이 상처였었고, 고민했다고 했다. 그 중 하나는 그 사람과 진솔한 이야기를 시도해봤는데, 결론적으로 그 톤이 정말 그 사람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이자 태도였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내가 사용하는 단어가 아름답고 화려하고 유려하고 멋지다 한들, 그 단어를 사용하는 내 말의 톤이나 투가 단어의 의미와 비례하지 않다면 그 단어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긍정적인 에너지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 때문이였다.


이제는 하다하다 못해 말의 '톤'과 '투'까지 신경써야 하나 생각이 들며 머리가 아파지지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우리의 삶은 관계의 무한한 실타레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백프로 자유로울 수 있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고, 상처 받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그렇게 하려면, 우선 내 자신의 말 뽄새와 말을 할 때의 태도에 대해서 한 번, 두 번 더 들여다보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겠다 생각이 든 어느 가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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