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나오기 전, 어젯밤 책상 위에 차곡히 놓아둔 편지지들을 꼼꼼히 센다.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오케이.’ 혹시나 빠뜨리고 왔을까 싶어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번 더 가방 속을 들여다본다. 구겨지면 어떡하나 파일 속에 끼워둔 편지지들을 확인하고 그제야 안심. ‘오늘 꼭 스물여섯 장의 편지를 다 써야 한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코로나 19가 잠시 나나 아이들을 방심하게 만들더니 최근 다시 말썽이다. 학교는 수능 시험을 9일 앞둔 시점부터 전면 온라인 등교로 학사 일정을 변경했다. 작년 한 해동안 내 새끼라 생각하며 보듬었던 고3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담임도 아닌데 괜히 오버한다고 눈총을 받을 테지만, 나름 자그마한 응원을 하고 싶어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써줘야겠다고 결심했더랬다. 미루고 미루다 마감일은 갑자기 찾아왔다.
책상에 쌓아둔 편지지들과 싸움을 한창 벌이던 중 옆을 지나가던 동료 교사가 한마디 건넨다.
<뭐야. 애들한테 일일이 편지를 써?>
<네. 작년에 워낙 좋아했던 아이들이기도 하고, 올해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을 테니 힘 좀 실어주려고요.>
<애들한테 인기 끌어서 뭐하게? 교사가 탤런트도 아니고 말이야.>
이 말을 불쑥 던지고는 자기 자리로 가버린다. 책상에서 한참을 벙찐 얼굴로 있었다. 수업 종이 울리고 교실에 들어가서도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채 50분을 보냈다. 바람 좀 쐬려 잠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학교 건물을 바라봤다. 나는 인기나 얻으려고 지난 밤새 조마조마했었던가.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탤런트라 불린다. 연기력이나 스타성을 인정받아 그 인기가 정상을 달리는 이들은 인기 탤런트, 톱 탤런트가 되어 대중과 사랑을 주고 또 받는다. 내가 아는 단어 탤런트는 ‘재능’이나 ‘능력’이지 그 사람의 직업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연기자의 1차적인 목표가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하는 것, 즉 자신의 ‘탤런트’를 보여주는 것.
이것을 통해 대중의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은 이들의 생명력은 길게 지속된다. 그들이 연기를 위해 공을 들이고, 인물을 소화하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것에 대해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을 대중들은 사랑한다.
교사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대하는 사람이다. 교사의 탤런트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과 더불어 학생을 대함에 있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가르치고 대화하고 함께 생활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정신적, 학문적 실력을 도모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1차 목표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주는 신뢰와 사랑은 내가 매일 학교로 출근하도록 이끄는 동력이 된다. 아이들을 위해 주말 내내 수업 준비를 하는 것도, 수능을 앞둔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편지를 써주는 것도 교사로서의 ‘탤런트’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이를 통해서 나는 아이들과 사랑을 공유하고 생명력 있는 교사가 되려는 것뿐이다. 인기나 끌어보려 아침부터 편지지 매수를 세었던 것이 아니었던 터라, 선배 교사의 한 마디가 씁쓸하게 느껴진다.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선배 교사를 마음속에서 비난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 중에 정말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와 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한창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부터 교직에 몸 담았던 그에게 지금의 학교나 젊은 교사들의 모습은 이상할 수 있으리라. 수업 연구나 업무 처리도 바쁜데, 아이들한테 편지나 쓰면서 살아남으려는 후배 교사가 안쓰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조언하는 선배교사로서의 역할을 다했을 뿐, 거기에 발끈한 내가 바보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내 방식대로, 교사로서의 ‘탤런트’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 다른 철학을 가진 교사가 많을수록 아이들도 다양한 지도와 관심 속을 받을 수 있을 테니. 시간이 많이 흘러 내 안에 편지지와 싸우는 힘이 사라지면 아마 나는 학교에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그 시간이 되도록 빨리 오지 않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