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양 May 08. 2022

차로 순간을 벗어나는 방법

만병통치는 아니어도 순간을 이탈할 수는 있다

보통 병원은 검진이나 간단한 진료를 위해 갔던 나였는데, 최근 남편의 수술로 꽤 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본의 아니게 이 사람 저 사람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게 되면서, 평소와는 다른 상황을 접하게 되다 보니 그간 잊고 있었던 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마구마구 솟아나는 요즘이다.


온통 아픈 사람 아니면 아픈 사람 곁에서 그들을 보살피며 같이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뿐인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갖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 세상 모든 일 중에서 내가 딱히 하고 싶지 않았던 일 중에 하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나의 선호의 여부라기보다는 사실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모두가 아파서 오는 이곳에, 분명 온갖 스트레스와 속상함, 슬픔만이 즐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한편으로 난 차를 가지고 일을 한다는데 참 좋았다. 그래도 차를 찾는 이들은 이 정도로 격한 감정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으로 틀린 생각이기도 하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오시는 분들도 꽤 몇 분 만났었고, 나 역시 힘이 들 때, 차를 더 찾기도 했으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었을까. 그렇게 차로 위로를 아주 조금이나마 드릴 수 있음에 보람이 있었고, 차가 분명 그분들이 가진 힘든 마음의 전부는 아니어도 조금은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나의 마음은 조금씩 변했던 것 같다.


차가 막 수입되어 즐기기 시작하던 그 시절의 유럽에서는 차가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된 것처럼 광고를 했었다. 두통에도 좋고, 심장에도 좋으며, 당뇨에도 효과가 있고, 혈액 순환도 돕는 등 차만 마시면 불로장생이라도 할 듯이 이야기했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이 말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맞지 않는 말이다. 조금의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차를 마신다고 그 문제들이 다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즘도 딱히 다를 바는 없다.


한동안 보이차가 큰 인기를 끌었을 때, 다이어트와 엮어 보이차를 홈쇼핑에서 팔았더니 식품 부문이 처음으로 매출 1위를 찍었다던 소문도 들려왔었다. 이렇게 차만 마시면 다이어트에 성공할 것처럼 말하는 곳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 보조적인 역할로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주체적인 역할까진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차는 약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한잔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나에게는 있다. 나 역시 그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고, 나와 함께 차를 마신 사람들도 그렇다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어도 잠시나마 고립되었던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차와 함께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차를 알리는 것이 나이 일이기에 일종의 소명감도 느껴지기도 한다.


희한하게도 차를 마시다 보면 순간적인 집중력이 생길 때가 있다. 차가 우려지는 걸 보며 소위 멍을 때린다거나, 뜨거운 물을 붓는 순간 퍼지는 차향을 맡을 때가 그렇다. 이때가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다. 나의 순간을 잠시 이탈할 수 있는 그때! 내가 있는 순간이 아닌 차의 순간을 엿보며 그 순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면, 그렇게 나의 순간을 잠시나마 잊었다면 일단 성공이다.


나는 집에서  차를 우릴 때면 남편에게 꼭 두세 잔의 차를 권하곤 한다. 차를 아직 낯설게 느끼는 남편은 가끔은 괜찮다고 거절하기도 했다. 혹시 병원에서 차를 우리는 나의 모습이 여유롭게만 보이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대충 챙겨 온 차를 하루하루 우려 남편에게 주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여기선 "차 마실까?" 하면 바로 그러자고 반갑게 응답한다. 가져온 차를 고르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함께 마시는 이 시간이 좋아 매일 권하고 있다. 그리고 남편도 이 순간을 잠시 이탈하는 경험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한 몫한다. 더 좋은 차와 다기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지만, 견디고 있는 이 시간에 이런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게 같이 차를 마시다 보니 이 마음 잘 간직해 다음번 강의를 할 때에 혹여나 마음이나 몸이 힘드신 분들이 오시면 차로 잘 다독여 드려야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마음을 차마 다 헤아리지 못해 튀어나온 서툰 말로 실수하기보다는, 말을 줄이는 대신 찻잔에 차를 더 담아 드리는 게 어쩌면 훨씬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차로 만병통치는 약속드리지 못해도, 잠시나마 힘든 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순 있으니 말이다.


내일도 아침을 먹고  후에 차를 마셔야겠다. 내일은 남편이 어떤 차를 고를지 은근 기대가 되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라에게 차를 대접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