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만큼 위험도 늘 놀이터에 중요한 요소로 다루는 유럽.
유럽은 놀이터를 단순히 놀기 위한 장소가 아닌 '위험'을 경험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로 정의한다.
- EBS 다큐프라임 놀이터 프로젝트 -
아이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건 잠자리채를 들고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바다는 일반 해수욕장이 아니고 돌이 많은 조금은 위험한 바닷가이다.
제주도에는 '원담'이라고 하는 돌로 울타리가 형성된 자연 어장이 있다.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거대한 돌로 만든 그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숙소를 선정할 때부터 그런 곳을 검색해서 그 근처로 숙소를 잡는다.
아이들이 바다에 들어가 놀고 있으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물론 돌담이 있어 너울성 파도에는 안전하지만 발이 닿지 않기에 잠깐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봤다가 아이들이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철렁하다.
둘 다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첫째는 자유형 시작하다 멈췄고 둘째는 배영 하다가 멈춰서 물에 뜰 수만 있지 위험에서 자기를 보호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바다는 실내 수영장이 아니다. 너무도 아름답지만 순식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날 것 그대로의 야생이다.
처음에는 구명조끼를 입다가 답답하니까 자꾸 구명조끼를 벗는다. 구명조끼를 입고서는 중요한 시점에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삼 년째 한 달씩 제주도에 내려가 바다에 살다시피 하니까 자기 목숨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생존 수영의 달인들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다가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순간 물이 깊어지는 곳이 있고, 물이 들어올 때는 생각보다 빨리 들어온다는 것도 다리에 쥐가 날 수도 있고, 해파리나 독이 있는 물고기를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다는 재미있지만, 위험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자연은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호기심, 모험심, 재미 그리고 위험까지...
예전에 좋은 부모란 모든 위험을 제거하고 안전한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빠르고 쉽게 그 모든 길을 통과해서 꽃길을 걷게 해주고 싶었고, 부모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이의 실패와 아픔을 아이보다 더 아파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아이는 정작 관심 없는 아이의 미래까지 걱정하며 불안을 조장하고 키워왔다.
물론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보호가 최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호기심이 커지고 반경이 넓어지면 놀이터의 크기도 커져야 한다. 그 놀이터에서 많이 넘어지고 가시도 찔려보고 울기도 하지만 곧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수많은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그런 위험한 놀이터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 역시 위험한 놀이터에서 놀아본 경험이 없고, 안전한 길로만 걸어왔기에 아이가 조금만 위험하거나 실패를 경험하면 어쩔 줄 몰라 당황한다.
그럴 때마다 동네에서 가장 위험하게 놀았고, 누구보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남편이 괜찮다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아이들이 잘해 낼 것이라는 단단한 믿음으로 나의 흔들리는 동공과 마음을 잡아준다.
어쩌면, 위험한 놀이터에서 놀아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 작은 원담에서 신나고 위험하게 놀던 녀석들은 성인이 되면 넓은 바다로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그 녀석들은 알 것이다.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곳이지, 하지만 얼마나 재미있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인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