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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맘 Jun 21. 2023

겁쟁이의 스쿠버다이빙

강릉에서 태어난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별도로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고, 집 근처가 바닷가가 아니었기에 갈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런 내가 신혼여행으로 간 몰디브에서 만난 바다는 환상 그 자체였다. 모든 숙소는 독립적으로 바다 위에 풀빌라 형태로 지어졌고, 휴식을 취하다가 심심하면 구명조끼와 간단한 스노클링 장비를 하고 바다에 뛰어들면 이름 모를 수많은 열대어들과 그보다 아름다운 산호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마나 좋았는지 남편 얼굴보다 열대어들 얼굴을 더 많이 봤을 정도로 여행 내내 내 얼굴은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여행이 끝나갈 때쯤 물에 잠겨있던 부분은 전혀 타지 않았고 나머지 부분인 목, 등, 종아리 뒷면은 모두 껍질이 벗겨졌다. 


하지만 몰디브를 제외하고 그렇게 아름다운 수중 환경을 가진 곳을 찾긴 어려웠다. 물론, 배를 타고 나가서 깊은 바다에는 그보다 아름다운 곳이 많겠지만, 해변가 그러한 환경을 가진 곳을 찾기란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겨우 찾은 곳이 인도네시아 롬복의 길리섬이었고 몰디브만큼 환상적인 바다 환경은 아니었지만 스노클링만으로도 수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는 곳이었고 아침에 수영을 하면 바다거북과 함께 헤엄칠 수 있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나는 혼자 스쿠버다이빙을 시도하기로 했다. 스노클링은 물안경과 숨 쉬는 빨대(?), 안전한 구명조끼를 입고 있기에 두려움 없이 가볍게 시도할 수 있었지만 스쿠버다이빙은 그 단어의 무게가 달랐다. 


하지만 해 보고 싶었다. 더 깊은 바다에 사는 아름다운 물고기와 산호는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궁금했다. 호기심 없는 나에게 두려움을 넘어서게 할 만큼의 강력한 이끌림이었다. 


하지만 길리섬의 대부분의 스쿠버다이빙 강사는 외국인이었고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사실 영어가 짧은 나에게 영어로 목숨 건 수업을 받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순간 공포가 밀려왔다.


스노클링은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면서 구경하는 거라 굳이 수영 실력이 필요 없었고 스쿠버다이빙도 산소통을 끼고 하는 거라 수영 실력이 필요 없다.


하지만 소심한 내가 구멍조끼에 의지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정도의 스노클링을 하는 거랑 허리에 납덩이를 차고 산소통을 메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신청한걸 갑자기 취소할 수 있는 용기도 없어서 두려움을 꾹꾹 누르고 수업에 참가했다.


우선 리조트 안 수영장에서 수신호 및 잠수 방법, 기압 차이에 적응하는 방법, 물이 들어갔을 때 빼는 방법 등 강사가 차분히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 강사가 잘 설명한 건지 목숨을 건 상황이라 집중력이 올라가 영어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영장에서의 훈련은 잘 마무리되고 우리는 배를 타고 근처 바다로 갔다.


남편도 없고 아무도 없다. 그 강사와 나 그리고 배를 운전해 주시는 분 셋이서 배를 타고 나갔다. 허리에 납과 산소통을 메고 파란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하늘은 그림처럼 파란데 바다는 검푸른 빛으로 나를 향해 일렁이고 있었다. 강사가 먼저 뛰어들어 나를 기다렸다. 나도 두 눈을 질끈 감고 검푸른 바다에 무거운 산소통과 함께 뒤로 나를 던졌다. (산소통을 메고 있을 때 앞으로 바다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몸을 돌려 뒤로 점프해야 한다.)


그때 던진 건 내 몸만 아니라 못할 거라 믿었던 나 자신의 두려움도 함께 던져 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스노클링으로는 만나볼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그리고 특히 바닷속에서 하늘을 쳐다볼 때 들어오는 빛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햇빛이 들어오는 바다는 투명하고 맑다. 그 속에 있는 다양한 칼라의 산호와 열대어들이 그 모든 두려움을 감내할만한 값진 순간들을 나에게 선물해 줬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햇빛이 닿지 않는 더 깊숙한 바다는 공포를 몰고 온다. 어둠이 가로막은 더 깊은 바다의 경계에서 나는 주저했다. 나의 용기는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아바타를 보며 나는 그 바다에 함께 있었다. 작은 경험만으로도 어쩌면 삶이 조금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의 크기는 커진다. 그 두려움의 경계를 매번 넘어가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바타 영화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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