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10개월이 됐을 쯤이다. 아이는 이유식을 떠주면 고개를 휙 돌리기 시작했다. 당차게 이유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잘 먹던 아이가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이유식을 거부하니 난감했다. 중기에서 후기 이유식으로 넘어간 직후라 밥을 넘기기가 힘든가 싶어, 부랴부랴 다시 중기 이유식을 먹였지만 그마저 실패했다.영문도 모른 채 아이와 숟가락 씨름하는 날도 늘었다. 밥상에서 장난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은 건 아이와의 실랑이뿐. 숟가락을 뺏기지 않으려는 자(나)와 뺏으려는 자(아이). 먹이려는 자와 안 먹으려는 자. 기싸움이 절정에 이르렀던 어느 날. 숟가락을 맥없이 뺏긴 나는 진이 빠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밥을 퍼먹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밥 먹는 걸 보고 흉내를 내는 건지, 스스로 먹는 법을 터득한 건지. 아이와의 씨름에 지쳤던 내 눈빛이 호기심으로 가득해졌다. 아이는 빈 이유식 통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숟가락질을 했다.
아이는 그제야 밥 먹는데 집중했다. 아이는 숟가락에 퍼지는 밥풀이 없었음에도 열심히 숟가락질을 했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쓸데없는 행동 같았지만, 아이는 마냥 행복해했다. (그래 보였다.) 때로는 숟가락을 반대로 들고 그릇을 푹푹 찔렀고, 거기에 붙은 밥풀 한 두 개를 맛있게 먹기도 했다. 빨리 먹고 싶으면 숟가락을 잠시 버리고 손으로 먹었다.
'스스로 먹고 싶었구나!'
그렇게 알고 보니 아이가 새삼 대견해 보였다. 한 때는 아이가 밥을 안 먹고 '떼'를 쓰는 것 같아 훈육을 해야 하나, 오은영 선생님께 보내야 하나, 뽀로로를 틀어줘야 하나 등 무한 걱정을 했다. 그러던 아이는 엄마가 주는 밥을 얌전히 먹지 않고 버티는 말썽꾸러기에서 스스로 해결하려는 대견한 녀석이 됐다. 아이는 식탁 위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앉아 우리 부부와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됐다.
처음 쌀미음 먹던 아이 사진최수진
물론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고 싶어 하면서부터 식탁과 마룻바닥은 엉망이 됐다. 옷은 하루에 기본 3번은 갈아입혀야 했다. 그렇지만 아이의 의지가 한없이 기특했다. 식사 시간마다 청소를 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럴 때 오히려 아이를 독려하고 폭풍 칭찬해줘야 한다고 한다. 요즘에는 아이 스스로 먹는 밥과 내가 먹여주는 밥을 분리해 차리고 있다. 아이가 스스로 먹을 수 있도록 이유식을 조금 덜어주는 방식이다. 물론 내가 먹여주는 양이 반 이상이지만, 아이는 언젠가 나 없이도 모든 밥을 다 먹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을 생각하니 한편으론 섭섭하다.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서다. 엊그제 두 시간에 한 번씩 수유하며 애지중지 키운 갓난아이가 벌써 엄마 도움 없이 자립하려고 한다니 말이다.
아이의 폭풍 성장에 대한 섭섭함도 잠시, 육아의 본래 목적은 아이를 독립시키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의 숟가락질은 아이 성장의 초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자기 주도 식습관을 도울 수 있는 식판, 숟가락, 포크 등을 폭풍 쇼핑했다. 아이가 스스로 먹는 것에 대한 기쁨을 열심히 터득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