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호명할 때 덧붙이는 호칭에는 '당신은 내게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테면, 이름 빠진 '야'라는 호칭에서 유추할 수 있는 너와 나의 관계, '~님'이라는 호칭에 포함되어 있는 당신을 향한 존중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회사 내에서 직원을 호칭하는 일에는 예절이 필요한 것이다.
"야! 너 어제 그거 처리했어?"
사무실 내에서 직급이 높은 어떤 한 사람이 부하직원을 '야'라고 부른다. 그 호칭을 사무실 내 모든 직원들이 듣는다. 왜? 우리들의 귀는 모두 뚫려있으니까. 내가 아는 그 부장은 존중받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러니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거겠지.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 반려자를 부르는 호칭에 아이 이름이 들어가곤 한다. 개똥이 엄마, 콩순이 아빠, 혹은 오빠... 아이는 자신이 엄마 아빠를 어떻게 호칭해야 하는지 부모로부터 힌트를 얻는다. 아이가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않고 오빠라 부르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엄마의 입에서 시작된 것일테니까.
2년 전 프랑스 여행에서 만난 질베르는 은퇴한 60대 남성이었다. 그는 프랑스에 계신 지인분의 애인이었는데 그때 우리가 그를 부르던 호칭은 그저 이름이 전부였다. 질베르 생각은 어때요? 질베르 괜찮아요? 질베르 고마워요. 이름을 온전히 부름으로써 그를 나이와 무관하게 인간으로 대할 수 있었고 뭔가 편견 없이 충만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온전한 이름 석자가 불리는 것은 내 존재가 상기되는 일이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 평생을 살아오느라 잃어버린 이름 석자처럼 내 존재를 상실하지 않으려거든 누군가의 이름 석자를 불러보자.
이름 없는 자여, 그대의 이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장이 나를 '야'라고 불러주길 고대하는 중이다. '왜?'라고 받아칠 준비는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