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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Jan 30. 2022

당근의 세계

다양성이 존재하는 골 때리는 세계

현시대는 마치 빠르게 달아올랐다 빠르게 식어 버리는 양은냄비 같다. 과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신문물이 버티는 기간은 짧고 그만큼 버려지는 물건도 많다. 어제 산 물건인데 오늘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어제의 신문물은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다. 이월 상품은 금세 중고나라로 직행해야 한다.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의 변화 속도는 쉽게 싫증 내는 소비자를 양산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버려대는 멀쩡한 쓰레기들로 지구는 소화불량상태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고나라는 분명 지구를 위한 나라가 맞다. 그 뒤를 쫓는 당근마켓 또한 범지구적인 존재임에 분명하다. 포장을 뜯지도 않았거나, 딱 1회 사용 후 변덕이 찾아왔거나, 아니면 사용을 게을리한 사이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었거나, 물건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물건의 가짓수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일 수 있다면, 판매자 입장에서는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버리지 않아 다행이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얻어 다행인 것이다. 그야말로 필요충분조건이 아닌가. 중고거래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은 이러한 소비자의 수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중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의 이용자 성향은 지역마다 그 차이를 보이는데 지역을 거점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각 지역별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당근마켓의 세계에서는 강남 노른자 땅 위에 거점을 둔 이들과 논밭 산골 위에 거점을 둔 이들의 판매 물품에서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테니 필요한 물건도 다르지 않겠는가.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몇 번의 중고 판매를 경험한 글쓴이의 거래 순서는 대략 이러하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건을 등록하기 전, 타 판매자들의 평균 거래 금액을 검색하고 판매하려는 물건의 적정 가격을 책정한다. 대체로 한 번이라도 사용한 물건은 구매 금액의 50%, 사용감이 있는 편이라면 80~90%로 책정한다. 판매하려는 물건을 사진으로 찍어 업로드하면서 물건을 설명하기에 적당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클릭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대표 사진으로 선택해 초두효과를 노린다. 거래 금액은 높게 잡아서도 안되지만 낮게 잡아서도 안된다. 다짜고짜 인사도 없이 가격을 후려쳐 거래하려는 구매자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당근의 세계를 파악하면 나름의 꼼수를 부리게 되고, 무례한 이들의 꼼수에는 눈치껏 대처하게 된다. 물론 빨리 처분하고 싶은 물건이 있을 경우 이래도 되나 싶게 헐값에 내놓기도 하는데, 가격을 낮게 조정하면 구매자들이 개떼처럼 몰려들기도 한다. 인간은 어김없이 돈에 반응하는 동물임을 실감하게 되는 세계이다.


당근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판매자 수만큼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뭐 이런 것까지 판매하나 싶을 정도의 분리수거함으로 직행해야 할 물건도 있고, 가치가 낮아 보이는 것들에 과도하게 높은 금액을 책정한 물건도 있다. 최근 글쓴이가 판매한 물건 중에는 디자인샵 제품의 강화유리도마가 있었는데, 이를 구매한 자는 트럭 몰고 오신 겸연쩍은 머리숱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새로 이사해서 도마가 필요했다며 궁금하지도 않은 말들을 내뱉고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집으로 돌아갔다. 당근의 세계를 감히 예측하지 말라. 지구를 품은 이 세계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골 때리는 세계이다.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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