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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법의 발전이란 그럴듯한 이야기의 온전한 ‘재연’에 있는 걸까? 더 많이, 더 디테일하게, 더 화려하게. 그렇게만 본다면 자산어보가 선택한 흑백 비주얼은 일정 부분 퇴행적인 선택이라고 믿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용된 기법이 옛 것이라 해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완성된 영화 안에서 가지는 역할이다. 흑백으로 색채를 억누른 비주얼은 영화 전반에 엄숙한 무드를 덧씌운다. 마치 필터처럼 여겨질 수 있는 선택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감독이 의도했을 이야기의 재현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방언 화자는 쉽게 타자화된다. 그것이 실제 있어야 할 이야기의 재연이라 하더라도 방언으로서 입 밖에 나오는 순간 앞서 느끼는 지역색이 관객의 온전한 인식을 방해한다. 그것은 설사 방언의 화자일 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자주 등장하는, 영화 속에서 드문드문 나오는 사투리를 갖다가 지엽적인 말투 만으로 저게 진까리다 혹은 이기 진까리다 하는 논쟁(?)도 결국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자산어보는 관객이 방언에 대해 가지는 편견 사이에 흑백이라는 필터를 끼워 넣는다. 비주얼이 주는 엄숙한 무게감이 가벼운 편견을 멋대로 날아가지 못하게끔 묶어 놓는다. 그러한 장치를 통해 구현된 영화 속 세계는 (어쩌면 배경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할) 일상적인 방언의 영역이다. 여기에 끊임없이 흑백을 상기시키는 소재의 힘과 드넓은 자연으로 스크린을 채우는 구도를 통해 흑산도는 영화 속에서 자연스레 있어야 할 주인공의 위치로 우뚝 선다.
섣불리 이야기하기 쉽지 않지만 이준익 감독은 이미 출세작인 황산벌에서 주류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의 언어로 지역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접근을 시도했었다. 만약에 이 영화가 그때의 경험을 거친 고민의 산물이라면 한국 영화 속에서 더 많은 말들이 응당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데 실마리를 제공하는 (방언화자로서, 그리고 감히 이야기하자면 한국 영화계에도) 윽수로 고마운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