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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Jan 07. 2024

표현

 소 농장으로 향하던 우리의 관차는 좁디좁은 농로에서 다른 차를 만나고 말았다. 농로는 일방통행 개념도 없는 경우가 많기에 누군가 양보하여 길을 터주어야 한다. 아무래도 상대방의 뒤편엔 비켜줄 자리가 없는 듯싶어 우리가 후진을 하기로 했다. 아슬아슬하게 우리 옆을 지나가며 상대 차량은 짧고 날카로운 경적을 울렸다.

“아니 힘들게 양보해 줬는데 왜 경적을 울려요?”

나는 기꺼이 양보를 해준 운전자분께 속상함을 표했다. 그러자 운전자분은 웃으며 대답했다.

“저 경적은 고맙다는 뜻이야.”

 충남의 문화인지 어른들의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종종 감사의 의미로 짧고 날카로운 경적을 울리는 경우가 있다. 짧게 비상등을 켜 감사를 표하는 나의 방식과는 다르기에 오해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대부분의 오해는 서로에 대해 잘 몰라서 발생하는 듯싶다. 단지 표현 방식이 달랐을 뿐인데, 한 번 쌓인 오해는 불편한 감정을 만들고 결국 서로를 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오해가 불러온 거친 비바람을 잘 해결하면 서로를 이해하고 더욱 돈독한 유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해는 해결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혹여나 속이 좁아 보일까 봐,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려 혼자 끙끙 머리를 싸매기 마련이다. 그렇게 홀로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해결은커녕, 허우적거리다 더 깊은 갈등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한 겹 두 겹 쌓여버린 감정의 골이 터지는 날엔,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낼지도 모른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나의 마음을 상대가 알아서 살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오히려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면, 대부분의 상황은 웃어넘길 해프닝으로 끝난다. 물론 내가 기분이 상할 수 있듯 나의 솔직한 표현에 상대방도 기분이 상할 수 있다. 하지만 속앓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속상한 날에는, 예쁜 문장에 포장하여 솔직한 마음을 전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를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수많은 인간관계에 얽힌 일상이 조금 더 잔잔하게 나아가리라.


 다시 만난 막다른 길, 길을 터주는 나에게 상대 운전자는 짧은 경적을 울렸다. 나는 의아해하는 연인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 경적은 고맙다는 인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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