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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Jan 28. 2024

양심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무선 이어폰을 찾았다. 이어폰을 케이스에서 꺼내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명이 다했는지 충전이 잘 되지 않던 이어폰이 결국은 영면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결국 유튜브 뮤직 대신 밀리의 서재를 켜 책 한 권을 집는다. 계획에 없던 독서인 데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자니 눈이 침침했다. 결국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 본다.


 그때 건너 자리에 앉은 한 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보아하니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건 모양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다양한 일상의 소리를 듣게 된다. 엿들으려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대화는 자연스레 청각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만다.

 “안녕하세요, 제가 콜택시를 이용했는데 카카오택시로 착각하고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내려서요. 버스 시간이 급해서 빠르게 뛰어오다 보니 기사님이 왜 경적을 울리시나 했네요. 혹시 기사님과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숨을 헐떡이는 걸 보니 정말 급했던 모양이다. 아마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일념에 콜택시를 불렀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내쉰 안도의 한숨 저편에서 기억의 조각이 맞춰지며 전화를 걸게 되었고, 콜택시 회사에서도 종종 있는 일인 양 웃어넘긴 모양이다. 민망한 웃음으로 답하는 학생의 정직함에 내 입가에도 괜스레 미소가 흘렀다.



 갑자기 내 자동차에 얽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차를 구매하고 2년 동안 물피 도주만 3번을 당했다. 단 한 번도 가해 차주는 나에게 연락을 남기지 않았다. 아무리 퍽퍽한 세상이라지만 자본주의 앞에서 최소한의 양심마저 기대하기 힘든 것일까. 기분이 상한 나는 나의 반려자동차를 위해 이를 악물고 블랙박스를 뒤졌고, 결국 경찰에 신고하여 보상을 받아내었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체결하지 않아 내리막에서 차가 밀려 내려와 부딪힌 경우였다. 분명 주차한 장소에서 차가 이동했으며, 두 차의 꽁무니가 맞닿은 상태였을 텐데도 가해 차주는 도주를 선택했다. 두 번째는 회식 후 대리운전을 불렀다가 기사님이 실수로 차를 긁었다고 했다. 세 번째는 가장 악질이었다. 주차를 하다가 차를 긁자 다른 칸으로 주차를 옮겨버리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세명 중 사과를 한 사람은 단 한 명, 대리기사가 차를 긁어 자신은 몰랐다던 사람이었다. 나머지는 몰랐다며 잡아뗄 뿐 죄송하다는 한 마디 사과도 없었다. 아마 문제는 돈이었을 것이다. 빛바랜 양심은 이제 돈을 이길 수 없는 하찮은 가치가 된 것일까.



 “기사님, 제가 카카오택시로 착각해서 돈을 내지 않고 내렸어요. 계좌번호 알려주시면 보내드릴게요.”

 이후의 통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부모님께 전화를 건 학생의 말을 듣고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엄마, 내가 착각해서 택시비를 안 냈는데 기사님이 괜찮다고 하셔서… 너무 죄송한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가슴 한 켠에 응어리졌던 편견이 한 학생의 순수함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직 양심의 가치는 살아있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가치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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