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밀은 없다
어떤 영화는 얼굴로 기억된다. 스크린에 가득 찼던 배우의 얼굴이 영화의 포스터보다도 더 강렬히 마음속에 맺힌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가 바로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분노에 찬 손예진 배우의 얼굴로 기억된다. 배우가 러닝타임 내내 분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영화는 많지 않다. 그것도 엄마 역을 맡은 주연배우가 말이다. 손예진 배우가 연기한 영화 비밀은 없다의 주인공 '연홍'은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엄마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벡델테스트는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를 계량하기 위해 만든 영화 성평등 테스트이다. 아이러니한 건 1985년에 고안된 벡델테스트가 지금에 와서 영화를 선택하는 새로운 지표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영화가 여전히 몇 편 안된다는 사실이다.
벡델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최소 요건은 다음과 같다.
1.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2명 이상 등장하는가?
2.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3. 남성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가?
영화진흥위원회가 2019년 2월 18일 발표한 '2018 한국 영화 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개봉한 순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한국영화 39편 중 10편만이 벡델테스트에 통과했다고 한다. 물론 이 테스트만으로 영화의 성평등지수를 섣불리 판단할 순 없겠지만, 이 단순하고 특별할 것 없는 질문에도 명쾌히 yes라 답할 수 없는 영화의 수가 여전히 과반 이상이라는 점은 믿기 힘든 사실이다.
중요한 건 벡델테스트가 반영하는 이 시대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덕에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다행히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또 여성 서사를 갖는 훌륭한 영화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화 속 엄마 캐릭터는 변하지 않는다. 엄마 캐릭터는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언제나 희생적 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애롭고 억척스럽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 마치 모범정답처럼, 하나의 이상향처럼 혹은 엄마란 자고로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영화 '비밀은 없다'는 남편의 유세 기간 사라진 자신의 딸 '민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홍'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가 기존의 '아이 찾기' 영화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연홍의 얼굴에 있다. 기존의 '아이 찾기' 영화 속 엄마 캐릭터는 대부분 수동적 얼굴을 하고 있다. 모성이 여성을 강하게 만든다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으면서도 엄마 캐릭터는 늘 감정적이고 똑똑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연홍의 얼굴은 어떠한가. 연홍의 얼굴엔 분노가 가득하다. 그러나 그 분노는 우둔하거나 자기 파괴적이지 않다.
민진이 사라지기 전, 연홍은 수동적 인물이었다. 연홍의 삶은 철저히 남편에 의해 재단되었다. 연홍은 마치 남편의 부속품처럼 남편 옆에 꼭 붙어 괜찮은 아내로 보이기 위해 애써왔다. 남편이 감춘 비밀을 딸이 알게 된 날에도 그녀는 여전히 진실의 저편에서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연홍이 변하기 시작한 건 딸이 사라지고 난 후부터다. 연홍은 자신의 남편 '종찬'이 딸의 생사보다도 '선거'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며 , 또 딸의 실종을 정치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주변인들을 보며 서서히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민진'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후 더욱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연홍은 민진이 죽은 후에도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치밀하고 집요하게 진실을 찾아 나섰다. 연홍의 흰자에 붉은 끼가 진해질수록, 연홍이 분노할수록 연홍은 보이는 것 너머에 진실에 빠르게 가까워져 갔다. 결국 그녀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그녀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진실에 도달했고 또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복수를 이루었다.
여성 캐릭터가 자력구제를 하는 내용의 영화는 흔하지 않다. 엄마 캐릭터가 자력구제를 하는 내용의 영화는 더더욱 흔치 않다. 연홍의 얼굴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이유는, 그녀의 얼굴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의 얼굴이 자애롭지도 억척스럽지도 자기희생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연홍의 극단적 자력구제는 기괴하고 집요하고 무섭다. 주체적이라기엔 한없이 과한 느낌이다. 또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연홍의 욕망은 모성이라 부르기 어색하다.
그럼에도 이 낯섦이 불쾌하지 않았다. 분노로 자신의 모성을 표출하는 연홍의 얼굴이 반가웠다. 분노할수록 똑똑해지는 연홍의 모습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엄마가, 모성이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영영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