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케터로서 첫 시작은 B2C 마케터였다. 우리의 사이트, 우리의 브랜드를 소비하는 '고객'을 위한 마케터였고 고객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던 마케터이자 보다 많은 고객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던 마케터였다. 고객이 어떤 점을 좋아할지를 느껴보기 위해 노력했고 고객이 어떤 것들로 인해 마음을 움직이는지 고민하고, 분석하던 마케터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1년여기간 동안 B2B 마케터로 살아가고 있다. B2C를 3년 겪고 B2B 마케팅을 1년 정도 겪으면서 참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한다. B2C 마케팅에서는 통하던 것이 B2B 마케팅에서는 통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B2C와 B2B 모두에게 통하는 브랜딩 전략과 마케팅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B2C마케터로 특화되었던 내가 B2B 마케팅을 하면서 경험했던 '썰'을 남겨보고자 한다.
B2C 마케터로 살다보면 '고객'과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트렌드에 따라 고객의 취향이 바뀌고, 고객의 니즈도 바뀌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생산하는 것, 그것은 마치 B2C 마케터의 숙명과도 같았다. 처음엔 그게 너무 재밌었지만 공식이 없기에 내가 속한 회사, 브랜드가 나의 퍼포먼스와 결이 맞지 않다면 재미는 물론 '능력'도 없는 직원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참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당장 내부 직원도 힘든데 외부의 고객들까지 날 힘들게 한다? 멘탈 바사삭이 오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B2B 마케터는 달랐다. 나의 고객은 기업이고 기업이 우리의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한 것에 주목하다 보니 트렌드보다는 '서비스' 본연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선 서비스를 홍보하는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서비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B2C 마케터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었다. B2C 마케터는 내가 홍보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도 잘 아는 만큼 우리는 소비해주는 고객도 잘 알아야 했지만 B2B 마케터는 고객보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누구보다도 좋은 마케팅 전략을 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기에 1년 동안 고객 분석보다는 제품/서비스에 대한 시장분석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경쟁사 대비 제품과 서비스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고 이를 보완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이 B2B 마케터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러기에 현재 B2C 마케팅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른바 '공격적인' 온라인 광고 마케팅 등은 오히려 B2B 마케팅에선 통하지 않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오히려 큰 광고비 투입 없이 꾸준한 노출이 가능한 SA광고와 블로그 등 정통적인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꾸준한 노출을 진행하는 것이 매출과 퍼포먼스를 증가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B2C 마케터, 그것도 패션 분야의 인하우스 마케터로 살아가면서 정말 '안 해본' 일 없었다. 3PL 창고정리와 영업지원으로 홍대 플래그쉽 스토어와 M사 테라스에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일본인에게 옷을 팔았던 일 등 정말 다양한 일을 수행하는 일이 많았었다.
그러나 B2B 마케터라고 잡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유관부서와 협력해야 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타 팀의 업무를 도와줘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잡무들을 많이 처리했었다. (하긴 이건 인하우스 마케터라면 다 겪는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B2C 마케터로 살았을 때보단 확실히 B2B 마케터가 마케팅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기회는 많았다. 브랜드 마케터로 어느덧 브랜드 2개를 탄생시켰고, B2B 마케터로 각종 소개서와 제안서, 메일링 배너 등을 기획하고, 촬영 시안과 촬영 디렉팅도 했다. 이 것은 분명 마케팅 이외의 업무 때문에 본연의 업무에 집중을 못하던 과거의 나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었다.
B2C 마케터를 하면서 데일리 매출에 대한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았다. 매출이 떨어지는 시기에 맞춰 할인 프로모션이나 스타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등을 적절하게 진행하면 매출이 오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B2C 마케터로 있었을 때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면 프로모션이나 쿠폰 플레이로 매출을 이끄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기도 했었다.
B2B 마케터에게도 '데일리 매출'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왜냐고? 결국 '욕구'보다는 '필요'에 의해 우리의 제품, 서비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당장 마케팅 플레이를 한다 해도 매출이 오늘 날지, 3개월 뒤에 날지 절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B2B 비즈니스를 홍보하는 마케터뿐만 아니라 B2B 비즈니스 업종에 뛰어드려는 사람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을 지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던 것 같다. B2B 비즈니스의 성과는 절대 B2C 비즈니스처럼 빠르게 나올 수 없었다. 특히 매출은 더더욱 더.
B2C와 B2B는 마치 패스트푸드와 곰탕 같다. 빠르게 나오는 패스트푸드를 팔 것인지, 아니면 하루 종일 푹 고아 은은하고 깊은 맛을 내는 곰탕을 팔 것인지.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 있지만 적어도 빠르게 매출을 내고 성과를 내고 싶은 사람에게 B2B 비즈니스는 정말 '안 맞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B2C 마케터는 확실히 행동대장 스타일로 움직여야 한다면 B2B 마케터는 유지/보수, 서포터 스타일로 움직여야만 퍼포먼스가 났었다. 그러기에 그런 점에서 그동안 행동대장으로 살았던 내가 참 별난 애로 비쳤을 거란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_^)
그에 덧붙여 B2C 마케터가 기성복 정장을 파는 사람들이라면 B2B 마케터는 맞춤 정장을 파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B2B 마케터는 기업에게 '딱 맞는'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는 시장분석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와 분석, 서비스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하며 그것을 홍보하기 위한 매체들도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참 B2B 마케터가 편하면서도 막상 뒤돌아보면 '내가 한 게 뭐가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B2C 마케터는 그래도 답이라도 있었지 B2B 마케터는 묵묵하게 기다려야 답이 나오는 비즈니스의 특성상,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어야 퍼포먼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미학'만큼 B2B 마케터가 가져야 할 덕목이 또 있을까 싶은 순간이다.
어찌 됐든 B2B 마케터로 1년을 살아남으며 또 다른 재미를 느끼곤 한다. 그리고 후에 다시 B2C 마케터로 돌아갔을 때 나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보다도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가지는 마케터야 말로 제대로 된 마케터로 성장하자고 다짐, 또 다짐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