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해져 버린 것이 아닌, 무뎌진 것일 뿐.
이십 대 때를 돌이켜보면 뭐가 그렇게 가슴 아프고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소녀스러운 면이 많았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평탄하지 않았던 내 인생에서 부모님도, 친척도, 가족 같던 친구들도 내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내 인생이 고생 끝에 행복이 찾아오는 동화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인생에는 늘 배신과 배반이 기다리고 있었고 내 인생은 걷기 좋은 길이 아닌 자갈과 가시가 있는 길이라는 걸 20대를 살며 깨달았고,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간신히 그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어렸을 때 하도 울던 나에게 '그만 좀 울어.'라고 얘기하며 때리고 키우던 엄마가 이제는 내 가시 돋친 말에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 또한 자신들의 농담에 시종일관 반응하다 어느 순간 관계를 정리하거나 서늘한 기운을 내뿜던 나의 눈치를 보곤 했다.
그렇게 난 내가 모르는 사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어른이 됐다고 하고, 누군가는 철이 들었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성숙해졌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하는 그들 앞에서 애써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변한 것은 없다며, 내가 아닌 환경과 타인과 타협하고 싸우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내가 가진 모습과는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더라고, 그렇게 마음속 나에게 혼잣말로 대뇌 었다.
여전히 난 단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무뎌진 것일 뿐.
그 모든 것에 울고 불고 화내고 반응해봤자 힘이 드는 것은 나뿐이고, 그날 있었던 속상하고 상처받은 일들에 대해 감정 소모를 해봤자 다시 그 에너지를 채워야 하는 것도 나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다만 상처받고 힘들었던 그 모든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 정도의 단단함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신경 쓰이는 말과 행동들은 2-3시간 정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표출을 하진 않지만 꽁꽁 숨겨둔 나의 진짜 자아가 아직까지는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이 해야 한다. 극복이라는 것, 집중이라는 것. 그것은 잔인하지만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우리는 어쨌든, 오늘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좋은 일만큼이나 나쁜 일을 겪었을 때도 우린 오늘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그 전날, 정말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고 힘들어서 눈물을 펑펑 흘려도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서 키보드를 두들기며 일을 하고 월세와 공과금, 카드값, 각종 개인적인 일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했다. 나의 그동안의 삶이,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버티는 것이.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끊임없이 괴롭히고 가스 라이팅 하던 상사 앞에서도, 이별의 순간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였을 때도, 혼자 나 홀로 병원에서 링거를 꽂았을 때도, 이미 겪은 일을 돌이킬 수 있냐며 '그래, 그럴 수 있지.' 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렇게 버티면서 살다 보니 슬픔이란 감정은 나를 갉아먹는 소모품이다,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울어도 되는데, 웬만한 일에 울지 않은 내가 대견하면서도 징그러웠고 뿌듯하면서도 마치 혀를 날름거리는 뱀처럼 혐오스러웠다.
이대로 이런 어른으로, 성숙한 어른으로 살고 싶진 않다. 나도 느껴지는 타인에 대한 나의 벽이 그렇게 좋지만도 않고 타인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예전만큼 높지 않은 나의 모습도 싫다. 언젠간 여유가 생기고 어떠한 계기로 어떠한 순간에 바뀌는 날이 올 것이겠지만 지금 당장은 '생존'을 위해 컨트롤이 필요할 때라며 그렇게 오늘 하루를 그렇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