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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군 May 09. 2022

저는 '000' 마케터입니다.

치히로만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다.


유바바는 치히로의 이름이 거창하다며 '센'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출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온천을 경영하던 유바바는 치히로에게 '센'이란 이름을 준다. 그리고 그 이름에 정착을 할 때마다, 하쿠도 그렇고 제니퍼도 그렇고 그들은 늘 그녀의 이름 '치히로'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된 사실은, 치히로가 '끝없는 깊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센'은 그야말로 1천, 어찌 보면 의미 없는 이름이었다는 것, 그래서 유바바가 참 거창한 이름을 가졌다고 말했던 것 또한 그 이유에서 기초했다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기사 그렇다. 내 이름에서 성과 이름 중 1개를 뺀다면 무슨 느낌일까. 시간으로 불리거나, 법으로 불리겠지. 그럼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름이라는 것은, 결국 나를 대표하는 건데 나라는 존재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 누가 나의 존재를 제대로 평가해줄 것인가. 어린 시절 보았던 명작은 31살이 된 지금에도 참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곤 한다.




 하지만, 과연 '이름'이 부정되는 일이 비단 애니메이션만의 이야기 일가?


 크고 작은 회사를 다니며 나는 이내 참 많은 회사가 직책은 신경 써도 '직함'에 대해서 정하지 않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다. 첫 회사만 하더라도, 나는 콘텐츠 마케터로 입사해 다양한 콘텐츠 마케팅을 할 거라고 기대하고 갔었지만 정작 나의 업무는 프로모션 마케팅이 더해지기 시작하더니 ('막내'가 해야 한다던) 다양한 플랫폼 운영 업무는 물론, 관련 회사의 쿠폰 발급 및 직원 쿠폰 발급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때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무슨 마케터인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브랜드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CRM 마케터' 등 명확한 직함을 내릴 수 있었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다~ 하는 게 마케터라고 생각했던 게 컸었던 것 같다. (이럴거면 모든지 다한다던, 엠디랑 다를게 뭐냐고 생각하면서.) 첫 회사에서 그걸 못 내리다가 패션 브랜드와 다시 플랫폼을 거치고 나서야 나는 내가 '브랜드 마케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브랜드 마케터라는 직함을 찾고 나서 나는 성장을 위해 마케팅의 여러 분야를 직접 몸으로 겪고 배우며 '얇지만 넓은 마케터'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브랜드 마케터의 경우, 비단 브랜딩만 초점을 두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관련된 업무를 다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마케팅이 강조되면서 퍼포먼스 마케팅의 매체 장표를 살펴볼 수도 있어야 하고 감도 높은 촬영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crm은 또 어떤가. 멤버십 체계도 또한 브랜드 마케터가 해야 할 때도 있고 심지어 온오프라인 프로모션에서 헬퍼로 참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PR? 스타마케팅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경우, SNS 채널의 생태계와 함께 인플루언서와 스타를 보는 눈이 없다면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다. 모든 것들을 컨트롤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다양한 것들을 수행해본 경험이 없다면 전체 인원 컨트롤을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난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나는 내 직함을 찾는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내 직함을 찾는 데 걸린 시간과 노력, 흘린 눈물과 땀을 줄여주기 위해 내 부사수들만큼은 자신의 직함을 보다 빠르게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가령, 첫 번째 부사수는 인플루언서 관리와 PR을 하면서 정작 직함은 'AMD'였고 지금 회사의 부사수는 '뭐든지 다하는' 마케터였음에도 직함은 '콘텐츠 마케터'였다. 그들의 직함을 'PR 마케터'로, '퍼포먼스 마케터'로 설정하니 각자가 알아서 잘 성장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한 일은 직함을 잡아주고 방향성만 설정한 것뿐이다. '내가 널 보고 너의 업무를 보니 너의 이름은 이건 것 같아.'라고 말해주며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적용해보라고 말해주었던 게 다다. 그 결과, 첫 번째 부사수는 현재 PR과 관련된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모델 일까지 병행하며 본인의 풀을 이미 넓혔고 두 번째 부사수는 퍼포먼스 마케터로 이미 나는 2번이나 탈락한 검색광고 마케터 1급을 단번에 따며, 턱없이 부족한 광고 예산 대비해 광고 효율을 6개월 내 2배 가까이 뛰게 만들었다. 그들은 현재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추거나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마케터 내지는 직장인으로 성장했다.


 팀장이 되고 나서도 나는 내 밑에 있는 직원만큼은 그들의 목표를 설정하기를 희망한다. 물론 개인의 목표는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직함'이 주는 의미는 직함을 떠나서 그들이 꿈꾸는 미래까지 설정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설정해준다 해도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의 설정은 '휴지조각'이 돼 버리는 것을 이내 안 요즈음, 그들에게 내 비전은 나의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애당초 본인이 욕심이 없고 원하는 일만 하기를 원하는 직원에게 그들의 미래와 그들을 위한 비전을 제시한다 한들, 그것은 그들에게는 그들의 비전과 미래가 아닌 나의 욕심이라는 것 또한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들을 포기하기엔 나는 내 팀장이라는 '직책', 내가 가진 이름의 의미를 알기에 적당한 욕심과 노력을 부려보자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중이다. 그들도 나중에 깨닫겠지, 그들도 나중엔 알겠지 하면서. 평생 모르면 그건 뭐 내 책임이 아니다, 라면서.




 5년 차가 이제 곧 끝나가고 나도 6년 차 브랜드 마케터가 되어 간다. 31살의 나이에 시니어가 된다는 것. 나는 이제 나의 미래를 조금씩 다르게 설계해가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마케팅 전문가로서 성장할 것인지, 또 다른 역량을 찾아 나아갈 것인지, 그 고민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땐 내가 가져야 할 이름을 또다시 찾아야 하겠지. 그때까지 나는 내가 가진 역량을 develop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자고, 오늘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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