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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아리코테지 Jun 23. 2019

•저승사자 왔어 도로시•

사무실의 진풍경.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2시가 되면 사무실엔 진풍경이 펼쳐졌다.

바이어에게 보낼 완성된 샘플이나 원단들을 챙겨 패킹한 후 해외 물류 배송업체의 직원이 수거하러 오기 전까지 패키지를 수거함에 모아두어야 하는 시각.

배송 업체 직원은 여러 회사들을 돌아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각에 수거함의 패키지를 수거하고 매몰차게 떠나버린다.


난 그를 매일 오후 2시에 나타나는 저승사자라 칭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저벅저벅 그의 발걸음 소리가 나면 여기저기 비명 소리가 났다.


“아저씨 잠깐만요!!!”

“거의 다 됐어요!!!!!”

“오늘 이거 못 보내면 저 죽어요!!!!!!”


그가 패키지 리스트와 개수를 확인하는 동안 미처 발송 준비가 덜 끝나 본인의 패키지를 보내지 못한 막내들의 비명 소리는 매일 오후 2시 언저리에 들려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패키지가 제시간에 바이어 손에 쥐어져야 상사들은 그다음 스텝의 업무를 할 수 있으므로 하루

패키지 발송이 지연된다는 건 그만큼 납기지연의 밑거름을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승사자 아저씨께 조금만 기다려 달란 말을 하는 직원은 업무의 준비 속도가 미흡한 신입직원 이거나 완성된 샘플이 수정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아니면 농땡이를 쳤거나 등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직원들의 입에서 주로 나오는 절규 같은 거였다.


사실 배송업체 직원 입장에서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은 매몰차게 거절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한 곳에서 지체하면 그만큼 다른 회사를 돌아야 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되는 일이었다.

매일 정해진 비행기 시각에 패키지를 태워 보내야 하니 인천공항까지 가는 시간도 감안해야 하니.


난 그 배송업체 직원이 오는 시각. 그러니까 오후 1시 55분부터 2시 5분 정도까지 약 10분의 진풍경을 가만히

지켜보는 게 회사에서 몰래 혼자 즐기는 시간이었다. 저승사자 등장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여기저기 난리 치는

막내들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샘플 하나를 패키지로 보내려면 샘플실에서 갓 나온 따끈한 옷의 사이즈를 구석구석 체크해야 하고 옷의 중량도 확인한다.

부자재는 잘 달렸는지 라벨도 지시된 자리에 제대로 박아졌는지 등등의 꽤 여러 확인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그리고 발송 컨펌을 위해 각 팀장 들은 최종 사인을 해줘야 했는데 시간이 목전에 다되어 내 책상 위에

물건이 쌓이면 결국은 나도 부담이 되는 일이기에 내 부하직원이었던 도로시 에겐 제발 미리미리 패키지 준비는 챙겨 놓으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했다.

서둘다 보면 분명 빠트리는 업무가 발생했고 밑 작업부터 문제가 생긴 일은 결국 큰 업무의 사고가 유발되니까.


도로시는 나보다 10살가량 어린 내 직속 부하 직원이었다.

그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전갈 같았다.

일 욕심도 많았고 독기와 집착으로 무장한, 내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되도록 많은 걸 가르쳐 주고 싶었고 다른 팀의 같은 연차의 직원들보다 잘난 부하직원이 됐으면 했다.

다행히 실수하는 것도 싫어하고 혼나는 것도 매우 자존심 상해하는 성향이라 업무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그런 도로시가 유일하게 당황하고 얼굴이 상기되는 시간이 패키지 보내는 시간이었다.


평상시 저음의 목소리인 그녀는 저승사자 아저씨의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목소리가 두 옥타브 정도는 올라간 소리로 꺅꺅 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지금도 그 모습을 가만히 상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은 같은 업무를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지만 가끔 그때 도로시와 샌드위치를 입에 하나씩 물고 야근할 때의 대화가 떠오르곤 한다.

서로 각자의 모니터를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듯 하는 대화는 그녀와 나의 방식이었다.


“도로시 넌 이렇게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맨날 뭐에 쫓기듯 살아도 이 일이 재밌냐.”


“누가 일을 재미로 해요. 그냥 하는 거지. 그래도 가끔 과장님이랑 뭔가 해낸 거 같을 땐 재밌어.”


툭하니 내뱉은 건빵 맛 같은 그녀의 대답 중에 귀에 거슬릴법하게 섞여있던 반말은 오히려 별사탕만큼 달기도 했다. 진짜 도로시의 마음 같아서...

혹시나 나만큼 지친 상태가 되게끔 내가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도로시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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