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을 들여다보면 취향이 보인다.
나의 공간을 채우고 살림살이를 들이는 동안 그 양이나 종류가 나름의 정해놓은 적정선을 넘지 않으려 아직도 노력은 진행 중이다.
필요한 살림들이 나타나 줄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했기에 살림이 채워지는 시간도 적지 않게 흘렀다.
새물건을 사들여 놓았다면 기다림의 시간은 길어봐야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고 택배가 도착하는 시간이 다였겠지만 중고 물품을 찾고 고르고 취향의 거름망에 걸러내고 있다 보니 아직도 필요한 살림이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필요하지만 미처 구비하지 못해 결핍처럼 남아 있던 불편한 부분들은 살림이 채워짐으로써 불편이 편리로 바뀌는 순간.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요즘 같은 세상엔 결핍의 부분을 어느 한 군데 꼭 남겨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질적 결핍을 경험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진 세상이라...
그렇게 하나씩 서툴고 불완전하게 공간을 채우는 기간에 한번은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천 원짜리 양념 종지를 받으러 차를 끌고 구불구불 십리 밖 동네를 다녀온 추억이 생기기도 했다. 종지를 주신 판매자분은 별거 아닌 물건 가지러 온 정성이 되려 감사하다며 맛있는 마들렌을 같이 싸주시기도 했는데 판매자와 난 천 원짜리 종지로 엮어진 시간을 잠깐 함께 했지만 뭔가 큰 의미의 프로젝트 하나를 같이 해낸 기분이 들기도 했다.
되돌아오며 기름값 낭비하며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스스로를 자책할까 봐 마음에 드는 뚜껑 있는 종지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본전 생각이 날지도 모르는 작은 종지일지라도 버려질 운명에 처한 종지를 구했고 내 취향도 만족시키는 별거 아닌듯한 별일을 해냈으니까.
코테지는 그렇게 손때 묻은 중고 살림들과 예전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용하셨던 케케묵은 보물들로 하나둘씩 천천히 채워지는 중이다.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을 다락에서 발견한 날 마음 한구석이 이유 없이 따뜻했다.
어떤 날은 한쪽 벽면이 가득 차게 무언가 꺼내 기대어 놓을 때도 있고 또 다른 어느 날은 많이 기대어 놓은 물건들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져 벽을 또다시 비워 낼 때도 있다.
크지도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나만의 공간은 그렇게 내 감성을 풀어내는 스케치북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여러 날 거쳐 꽁꽁 쌓아둔 빈티지한 물건들을 풀어내 놓는 나만의 마켓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만들어 주는 풍요로운 감정들은
바쁘게만 살던 내가 꿈꿀 수 없었던 일들이라 그동안 치이고 다쳤던 마음들에 큰 치유가 되기도 한다.
오래된 것들과 마주하다 보면 그것들만이 가진 힘이 있단 걸 느낀다.
겉은 낡았을지 모르나 그 숱한 세월을 잘 버틸 수 있던 이유는 그 옹골참이었다는 걸 반증해 보이듯 오래된 것들은 분명 그것들이 지닌 무언가가 있다.
열정 많은 뜨거운 젊은 날의 나를 기억하자면 물질을 대하는 마음이 참 얕고 가벼웠고 생각이 깃들지 않았었다.
눈은 자극을 좋아했고 항상 새로운 걸 찾아 킁킁 거리기도 했으며 무언가를 잔뜩 구매하고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이건 언제 사들인 건가 한참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 것이 반복이 되고 습관이 되고 시간이 지나 그런 행위가 무감각해지기도 한다는 걸 그보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 알았다.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필요한 살림을 더 이상 사들이지 않아도 아마 그다지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지만 알게 모르게 생겨나고 없어지는 유행과 편리란 것에 또 무언가를 구매하기를 반복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물건과 살림을 들여놓으며 그릇 하나, 컵 하나를 귀한 마음으로 대하는 법을 알게 됐다.
물론 나도 예쁜 물질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내 취향과 감성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물건들 이란 전제가 붙긴 한다. 하지만 적어도 깊이 없이 사재기에 몰두했던 그 시절과 살림을 대하는 내 마음이 좀 달라져 있는 건 사실이다. 그만큼 내 살림을 하나하나 들이는데 까지 일부러 시간과 공을 들여 스스로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렵게 구한 물 건들은 적어도 쉽게 대해 지지는 않으니까. 이젠 하나를 사더라도 내 생이 다할 때까지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블로그에 기록하곤 하는 나의 그릇의 이야기와 소소한 살림의 글들을 다시 훑어내려갈 때면 나와 연이 닿은 물건들과의 회고록을 써내려 가는 기분이 들곤 한다. 물건을 기록한다는 게 작은 걸 거창하게 포장하는 일 같기도 하지만 나의 공간에 자리한 물건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그 자리에 있다는, 물건에게 주는 막중한 책임감
같은 일이기도 하여 앞으로도 소소히 꾸준히 살림의 기록을 하고 싶다. 살림 이란 게 살림살이의 물질들과 함께
해 나가는 것이기에.
생명 없는 한낱 물질에 불과한 것들도 가끔 숨소리를 내는 듯하기도 하고 적막한 시간에 내려 마시는 커피 한잔과 어울리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할 수 있단 걸 느낀다.
비록 최근에 구입한 산뜻한 유행 컬러가 아니지만, 최신 소재의 세련된 재질도 아니지만 오래되고 낡아 오히려
친근하고 편해 보이는 나의 살림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정들고 익숙해져 살림이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짙어지는 중이다.
삶의 무게에 치이고 지친 마음도 작은 살림살이 하나에 치유받고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게 나로서는 참 다행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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