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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아리코테지 Sep 05. 2019

•헌것과 새것의 의미•

설렘은 새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테지 내부를 손보는 일이 한창인 시점.


뒷마당 할아버지의 창고에서 발견한 오래된 물건들과 개인적으로 취미 삼아 모아 온 아니면 마음에 들어 보관해온 물건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나만의 취향대로 채워질 생각을 하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무료 나눔으로 얻은 염장 해파리 상자는 코테지에서 여러 용도로 활용 되었다.

하지만 집 하나를 채울 만큼 꼭 필요한 물건이 모두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었기에 새로 장만해야 하는 살림도 많은 상태.

필요한 살림살이 리스트를 만들고 가구며 가전이며 이것저것을 인터넷과 오프라인을 틈틈이 둘러보다가 구매를 결정짓기 어려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왜 그랬을까. 이전에는 물욕에 대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였는데..

왜 전전긍긍 구매하기 클릭을 며칠째 미루며 결정장애의 우유부단함의 모습을 보이게 됐는지..


내 과거의 직업 그리고 물질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 건 구매에 대한 우유부단함을

마주 하면서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매년 같은 디자인의 옷을 백만 장씩 찍어내는 일을 총괄하던 업무를 하며 말 그대로 쏟아지듯 생산된 원단, 자재, 포장용품들을 보는 것에 역겨움이 극에 달해 있던 때이기도 했고 새물 질을 내 공간에 들이는 것에 대해 과연 할아버지의 보물 창고의 보물들과 새물건이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릴지 상상해 보는 생각의 작업이 무언가를 새로 사는 것을  머뭇거리게 한 이유 같다.


당장 필요해서 익숙하게 스마트 폰의 쇼핑 창을 열어 물건을 고르다가 이내 좀 더 생각해 보는 걸로 창을 닫아 버리는 내가 어색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티브이 채널의 사이사이에 목에 핏대를 세우고 물건을 설명하는 쇼 호트들이 등장하는 홈쇼핑 방송이나 손에쥔 작은 우주 같은 물건의 스마트폰의 쇼핑 페이지는 구매를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게끔 선택과 구매의 과정을 계속 단축시키고 있고 앞으로 더했으면 더할 그 행위는 밥 먹는 일상과도 같아 나 또한 살림살이를 둘러보고 있는 시간들이 그저 매일 나도 모르게 해오던 습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인지 하게 되었다.

 적어도 귀하게 얻은 나의 시공간을 채우는 것에는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이 공간에 있어서 만큼은

내 행위와 생각이 사려 깊고 의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예전 나의 할머니는 설거지하실 때 찬물을 주로 사용하셨지만 기름기가 묻은 그릇을 닦으실 땐 부뚜막의 커다란 솥뚜껑을 밀어내고 그 안에 끓인 물을 사용해 설거지를 하시곤 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나가 한통 사 오신 주방세제 (그 당시는 모든 주방 세제의 대명사는 퐁퐁이었다)를 선반 위에서 내려 기름기를 제거하셔야 하실 때만 아주 아껴 한두 방울 사용하셨다.  어린아이 었던 나에게 그 광경은 퐁퐁이가 아주 고가의 귀중한 물건 같아 보였고 지금도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때가 떠오르곤 한다.

할머니는 한통의 퐁퐁이를 일 년은 사용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물질이 귀하지 않다.

얻어 내기 쉬워졌기 때문에 버리기도 쉬워진 시대.


앞서 말한 내 직업은 매해 백만 장에 가까운 옷을 생산하고 그다음 해에도 비슷한 양의 옷을 생산하는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었다.

작년에 생산한 백만 장이 다 팔렸으니까 같은 수량을 또 반복하여 생산해 내는 거겠지.

내년에도 이만큼을 또 생산해 낼 것이고. 그다음 해에도..

그 옷은 생산후 미주나 유럽의 대형 마트에서 팔리는 옷이었는데 어떤 국가는 옷값보다 드라이클리닝 비가 비싸기 때문에 드라이클리닝 하기 전에 옷을 버리고 새로 생산되어 있는 옷을 다시 구매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과 우려는 사실할 여유가 없는 어찌 보면 쓸데없는 일이었다.

전쟁 같은 현장에서 약속된 시간에 생산을 맞추어 컨테이너에 실어 보내기 바빴으니 말이다.

일에 회의감이 들었을 때 베트남 현장을 멍하니 지켜보며 어느 순간 들었던 생각이었다. 거대한 생산 현장을 보고 문득 무섭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일에 치이고 지쳐 신물이 나던 때는 새물건이나 택배의 포장을 뜯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며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물질의 집착이 이상하리 만큼 과했단 생각도 든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남들이 즐기고 사는 것을

나만 못 즐기고 있다는 망상(그야말로 망할 상상)에 빠져 구매 행위에 집착을 했던 거 같고 돈은 돈대로 새고

 쓸데없는 집착에 의해 구매된 물건들은 의미 없이 쌓여가는 생활 그뿐이었다.



사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들을 나열하면 내 평생 쇼핑이란 걸 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그것들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소유와 집착과 편리는 그것들을 잉여 순환하게 만들고 있고 나 또한 잉여 순환에 일조하는 업무를 오래 해왔으며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일에 지칠 만큼 지치고 질려버렸다.

가속이 붙어 멈추기도 힘든 삶에 브레이크를 잡게 해 준 사표를 제출하고 지금, 이 빈집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게 사실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감이 안 올 때도 있다.

앞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걱정은 접어 두기로 하고 나를 추스르는 데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돈 벌 걱정이던

미래의 계획이던 세워질 거 같았다.

그 많은 생각들 중에 뭘 어떻게 이 공간을 채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그렇게 심플하지만은 않았다.

흔해 빠진 아파트 구조도 아닐뿐더러 창의 방향이나 주방의 구조도 독특했기 때문에 기성품 같은 생각도

이 집에서는 배제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할아버지의 오래된 물건과 인스턴트 같이 만들어진 새물건을 같이 두는 게 싫었다.

오랜 시간이 묻은 편안함을 품은 물건들이 이곳과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공간을 채우는데 몇 가지 룰을 정했다.


마음 급하게 공간을 채우지 않을 것.

예민하게 생각되는 부분을 제외한 물건 외에 새물건은 들이지 않을 것.

공간을 채우는 시간을 의미 있는 생각들과 함께할 것.



우선 중고 사이트를 뒤지며 살림살이를 채우려면 내가 원하는 기간 안에 마무리되는 건 무리가 있었기에 그것도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이 필요성을 잃고 중고시장에 떠돌고 있었고 그중 내 취향과 필요에 맞는 물건을 Pick 하면 됐지만 그것들을 이곳까지 가져오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료 나눔을 하는 주인들은 물건을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 줄 사람을 찾는

중이기 때문에 그 뜻에 따르려면 언제 어디서든 픽업 준비를 해야 좋은 물건을 무료로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번거롭고 할애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일임은 분명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나에겐 다 의미였다.

환경에 엄청난 관심과 애정을 가진 환경운동가도 아니면서 이런 과정을 겪으며 점점 환경 운동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주변에 잉여의 존재로 버려지는 멀쩡한 물건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고를 구매하면서도 내 취향이나 구매할 물건의 소재, 디자인 등을 다 따지고 결정하려면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줄 알아야 했고 마음 급하게 구매하는 물건은 중고나 새물건이나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흔한 디자인의 의자지만 해당일 오전까지(아마도 이사 당일이었을 듯하다) 가져갈 사람에게 무료 나눔을 따르기 위해 그 동네 친구에게 부탁해 얻은 의자. 친구의 노고의 고마움에 같이 저녁을 먹는 시간도 가지게 되는 행복함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했다.


두께 10cm 난간을 일일이 손으로 톱질하여 잘라낸 모습.

친구 작업실이 세 들어 있던 건물 주인집이 내부 공사를 하며 바깥에 버린 40년 넘은 계단 난간. 이걸 차에 실어 주워가던 나에게 친구도 건물주도 정말 이상한 눈길을 보내며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엔 로구로(목공 과정의 일본 용어) 작업으로 만든 이 예쁜 계단 난간이 만들어낼 무언가를 그려내고 있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물건들은

따로 구매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오래된 느낌이 나는 걸 찾는 건 더 어렵다.

난간이 두꺼워 손으로 톱질을 하는데 정말 오랜 시간과 힘을 소비했지만 다이닝룸의 커다란 테이블을 힘 있게 잘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뿌듯함 그 자체였다.

널찍한 테이블이 있는 다이닝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갖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생각을 하며 노동에 박차를 가했다.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리사이클된 가구들과 할아버지의 창고에서 찾아낸 물건들이 한 공간에 어우러질 때였는데 창고에서 찾아낸 닭 모이 통은 다이닝룸의 멋진 조명으로 재탄생되었다.


내가 모아둔 리사이클 물건 중에 가장 크게 변신한 아주 오래된 침대 헤드.

재개발 지역을 우연히 지나던 중 구조가 특이하여 차에 싣고 코테지에 가져왔는데 쓰임새를 고민하던 차에 가장 큰방의 창문 사이 공간에 딱 들어가는 게 아닌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실 이런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좀 힘들다.

그저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없게 기분 좋으니 말이다.


#용인방아리코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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