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리 Aug 28. 2023

생일의 기억

휴직일기_2023.08.20.

아침부터 유난히 더웠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에어컨을 켜는 대신 거실 한편에 있는 실내 자전거에 올라 느리게 페달을 밟았다. 호흡은 금세 가빠졌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한 마리가 좁은 뱃속에서 느리게 꿈틀댔다.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하늘이 노래져야 애가 나온데이."


얼마 전부터 제법 무게감 있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뒤늦게 나타난 임신중독 증상으로 발은 풍선인형처럼 부풀어 오르고 다리는 수시로 저렸다.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룰 수 없는 불면의 밤을 수도 없이 보내야 했다. 살아오며 범했던 크고 작은 잘못에 대한 벌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 타기는 해방의 날을 앞당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미역국과 찰밥이 담긴 가방을 가지고 온 엄마가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면 그 처절한 몸부림은 제법 오래 계속 됐을 것이다.


"니한테 끓여 무라 하면 대답만 하고 안 끓여물게 뻔해서 내가 끓여 왔다."

"아...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 뭐 사실 니 보다 내가 무야지 맞지. 니 낳느라고 고생은 내가 했다 아이가?"

"그래요. 엄마 마이 잡숫지 뭐 하러 아침부터 이렇게 무겁게 갖고 오고 그래요. 날도 더운데...."

"잔소리 고만 하고 갖고 왔으면 맛있게 묵으면 된다. 근데 니 오늘 병원 가는 날이라 안 했나?"

"예. 아직 몇 시간 남았는데 뭐 이제 슬슬 준비해서 가야지요."

"그라믄 언능 국에 밥 챙기 묵고 갔다 온나. 내 채려 주지는 않는다. 갔다 와서 연락하고. 내 간다."

"응. 안 나가요."

"그래. 그래. 챙기 묵그레이."


엄마가 끓여  미역국과 찰밥을 그릇에 덜어 식탁 앞에 앉았다. 미역국과 팥이 듬뿍 들어간 찰밥 외에 아무것도 없는 조촐한 생일상이었다. 현재 남이지만 그때 남편이었던 남자는 퇴근 후 소고기 파티를 약속한 채 출근했고 엄마도 가 버렸다. 생일상 앞에 앉은 건 뱃속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생명체와 나뿐이었다. 처음 맞는 생일 풍경이 어색했지만 익숙하고도 진한 맛의 미역국 덕에 슬프지는 않았다. 금세 미역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병원에 가는 내내 제발 이 시련의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진통이 안 왔어요?"

"계속 아파와서..... 진통이라고 못 느꼈어요."

"하하. 출산이 30프로 정도 진행 되고 있어요. 당장 입원해서 분만합시다."


나는 그렇게 엉겁결에 분만실로 끌려갔고 그날 저녁 여덟 시 사십 분에 첫 아이를 낳았다. 서른두 살 생일이 끝나가던 밤이었다. 까만 밤하늘 아래 태어난 아이는 빨갛고 작고 신비로웠다. 간호사가 초록색 보에 감싼 아이를 내 옆에 누이자 불면의 밤도, 보아구렁이가 꿈틀 대는 듯 불쾌하고 묵직했던 뱃속 움직임도, 낯선 생일 풍경도 기억 저 편으로 밀어낼 만큼 강렬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나는 아무렇지 않을 평범한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의 생이 연결된 고리, 세상으로 난 문, 근원이자 또 다른 시작. 한 때는 봄에 심은 작은 씨앗이 여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영글어 다시 씨앗을 뱉어내듯 나의 삶에 적용되는 어떤 특별한 절기가 있어서 내가 태어난 날에 딸을 낳은 것이라 믿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사는 게 힘들어지자 반짝 특별했던 생일은 다시 평범한 날이 되고 말았다. 같은 날에 태어난 죄로 딸의 생일 역시 특별할 것 없이 지났다. 하지만 어느덧 열 살이 된 딸은 특별한 생일을 꿈꾸고 있었다. 풋살클럽에 같이 다니던 친구 생일 파티에 다녀온 이후부터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파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자주 내비친 것인데, 친정에 더부살이하는 주제에 열 살 소녀들을 죄다 불러 생일파티를 열어 줄 수는 없었다. 시골이라 생일파티를 할 수 있는 키즈카페나 패스트푸드점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늦은 여름휴가를 겸해 생일 기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기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름만 호텔인 모텔 대신 통창에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호텔을 예약했다. 여행 계획을 입 밖에 낸 후, 아이들은 여행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림 속에서 숱한 날을 보낸 끝에 다가온 여행 첫날, 나오는 휴게소마다 들러 용무를 보느라 예상보다 도착이 한참 더 늦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창을 배경으로 다이소에서 사 온 풍선을 붙이고 작은 케이크로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은 빼먹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피자를 포장해와 먹고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로 '레드슈즈'를 시청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닳아빠진 문턱에 누렇게 바랜 벽지를 보며 살던 촌놈들에게 여수 바다가 보이는 호텔방이 그렇게 익숙하고 편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호텔에서 뒹굴거리며 다음날을 맞았다. 혼자였다면 분명 금오도 비렁길 코스를 밟으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폭염 속에서 총 8시간이 넘는 비렁길을 함께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렁길은 노년에 하체 튼튼한 친구가 생기면 같이 걷는 것으로 하고 아이들 체력을 생각해 이순신 광장이 있는 여수 시내를 중심으로 케이블카도 타러 가고 하멜전시관과 아쿠아플라넷에도 들렀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였지만 아이들이 제법 잘 따라와 준 덕에, 나는 인솔자 겸 사진사 역할까지 할 수 있었다. 인파 속에서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팔을 당겼다가 몸을 뒤로 젖히기까지 갖가지 동작을 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 속 어디에서 나를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약간 서글프게 느껴졌다. 독사진은 못 찍더라도 셋이 다 나오는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가 찍어주겠다는 사람도 없는데 무작정 아쿠아플라넷 한편에 마련된 포토존 앞으로 갔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근처에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붙잡고 사진을 부탁했다.

그런데 요 아들 녀석이 협조를 하지 않았다. 부끄러워 그런 건지 멋있는 척을 좀 하고 싶었던 건지 의자 아래로 숨고 뛰고 난리가 났다. 그렇게 일 분 넘게 아들과 실랑이를 한 끝에 우리는 가족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려는 아들을 부여잡고도 사회적 미소를 잃지 않는 마흔한 살 여자와 그런 동생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린 열 살 여자, 혈기 넘치는 여섯 살 남자가 함께한 그날.


2023년 두 여자의 생일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도 그날 찍은 가족사진은 평생의 걸작으로 남을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이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