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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03. 2023

따로 또 같이 이십 년

오로지넷

"우리 이 방 이름 뭘로 할까?"

"오로지넷 어떠노?"

"우와. 좋지. 좋지. 우리한테 딱이다."


오로지 넷. 정말이지 우리에게 딱 맞는 이름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동아리 활동이야 학회야 하다 못해 미팅, 소개팅까지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다방면으로 맛보는 동안 우리 넷은 똘똘 뭉쳐 오래방(오락실 노래방, 지금으로 치면 코인 노래방 정도)과 김밥집을 그렇게 드나들었다. 크게 넉넉지 못한 집 자식들이라 그랬던 건지 원활한 신진대사 때문이었는지 김밥에 떡볶이를 시켜 놓고 무한리필 가능한 육수는 얼마나 퍼먹었는지 졸업 A로부터 김밥집의 폐업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집이 없어진 게 다 우리 같은 것들 때문이라고 넷이 입을 모아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왕성한 식욕 외에는 생긴 것도 차림새도 성격도 전혀 닮지 않았던 우리는 졸업 후 진로도 모두 달라서 한 명은 선교활동을 위해 해외로, 한 명은 임용 고사 준비를 위해 서울로, 한 명은 대학원으로 가고 나머지 한 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도서관에 틀어 박혔다. 자연스레 만남이 줄어들고 멀어지는 듯했지만 우리는 MZ의 선두답게 싸이월드나 문자, 통화 등으로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끈을 놓지 않았고 카카오톡의 대중화와 함께 오로지넷 채팅방을 설해 매일의 일상을 공유하는 한편 시간을 쪼개어 다시 어울렸다.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만남을 자주 갖기는 어려웠지만 우리는 만날 때마다 어제 본 사람들 마냥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 살아 계신 부모와 돌아가신 부모 이야기, 야밤에 잠자리 나는 이야기, 주름 이야기, 살 이야기, TV프로그램 이야기, 대학시절 이야기, 안주 이야기 등 일관성 없는 이야기를 일관되게 해댔다. 그러는 동안 울었다 웃었다 화를 냈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쉴 새 없이 오르내렸지만 단 한 명도 이탈하는 사람 없이 한데 뭉쳐 더 단단해지곤 했다.

그렇게 이십 년(정확히 이십일 년)을 따로 또 같이 보낸 우리는 2023년 유난히 볕 좋고 바람 가벼운 가을날에 다시 모였다.


베이커리 카페부터 한 없이 이어진 먹잔치가 무르 익어 갈 즈음 B가 인생 네 컷을 제안했고 우리는 반쯤은 술에 취해 반쯤은 흥에 취해 인생 네 컷을 남겼다. 늙어도 여자라 눈을 감았다느니 얼굴이 크게 나왔다느니 각도를 잘못 잡았다느니 저마다 한 마디씩 불평을 했지만 사진에 담긴 각자의 모습보다 함께한 순간에 가치를 두었기에 누구도 다시 찍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SNS에 사진을 올려도 되겠냐는 내 물음에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야! 당연하지! 뭘 묻노? 다 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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