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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땐땐 Feb 13. 2021

내 귀엔 매미가 산다.

스트레스 박멸은 불가능해 보입니다만


나는 매미를 귀에 달고 산다. 이명이 생긴 것이다.

매미가 찾아온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온갖 격무로 스트레스가 폭발했던 날.

퇴근 후 테니스 레슨을 받기 위해 테니스장으로 갔다. 기운 없이 서 있었는데, 사람들의 공치는 소리가 내 귀를 날카롭게 공격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귀에 물이 찬 듯 멍~해졌다. 그날 이후 내 귀에 매미가 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스피융 스피융 하고 우는 건 아니었다. 얌전하게 쉬~울고 있다.


한의원과 이비인후과, 동서양을 넘나들며 치료에 힘썼지만 매미는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고 함께 살기로 했다. 그런데 평생 매미소리를 들으며 산다고 생각하니 뭔가 서럽기도 했다. 하,, 이거 산재 아닌가. 고용노동부에 찾아갈 용기까진 없었다. 원래 여름을 좋아했으니, 밀레 파카 입고 엉뜨 켜고 운전해도 여름 기분 내며 살아야겠다.


회사 스트레스로 얻은 병이 이명뿐이겠는가. 나는 가끔 자다가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엑셀 파일을 보기도 하고 생각난 것들을 메모장에 옮겨 적는다. 한 번씩 심장이 쪼여오기도 하고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손발에 땀이 흥건해질 만큼.


조직문화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내용을 많이 본다.

'직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선택의 권한을 넓혀주면 효율성이 올라가고 업무 만족도가 높아진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딴지를 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 회사는 무한한 자율성과 선택의 권한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책임의 범위도 무한하다는 게 함정 ㅡㅡ.

팀장들이 내용을 모르는 건 당연하며 책임회피가 주특기인 회사. 모든 직원이 책임지지 않는 것을 최상 최대의 과제로 생각하는 회사. 이러니 담당자로서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사원 나부랭이 시절부터 업무 압박에 시달리곤 했다. 우리 회사는 매년 감사를 받고 있는데, 매년 감사의 타깃에 내 이름을 오르락내리락했었다. 입사 1년 차부터.

처음엔 담당업무가 많아지는 것이 회사의 인정이라 생각했으며, 나 역시 업무역량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악마의 구렁텅이 었다는 사실을 입사 후 3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조직문화가 이렇다 보니 정치질과 모함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사원까지 이용당하는 실정이니 이런 개판이 어디 있겠나. 음의 블랙스완이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점점 일은 많아지고 책임질 상황은 더더욱 많아진다.
이러니 이명이 생기고 강박증이 생길 수밖에.


어떻게 이렇게 평생 살겠나. 어찌 됐건 스트레스는 풀고 살아야지. 유튜브,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내 후배가 생긴다면 우선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이라고 해주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 자신을 위해 돌+아이가 되라고 하고 싶다. 회사 안에서.


당연히 모든 면에서 돌+아이가 되라는 소리는 아니다.

내가 나를 위해 꼭 지켜주고 싶은 것에서 만큼은 돌+아이가 되라는 뜻이다.

나는 다음의 경우에 돌+아이가 된다.

- 누가 뭐라 해도 6시에 퇴근한다. 야근은 내가 선택한다.

-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녁 회식은 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회사에 남지 않는다. 회사에 오래 앉아 있어야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이런 병맛 같은 조언을 듣더라도 나는 퇴근한다. 바쁘면 내가 알아서 야근하거나 원격으로 일한다.

"회식할래?" 이러면 나는 "다음에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퇴근에는 연습 없다. 눈치를 주더라도 웬만하지 않고서야 타협은 없다.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 집으로 간다. 돌+아이가 되더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쯤은 꼭 지켜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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