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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땐땐 Feb 14. 2021

영혼을 안드로메다로

갑질을 대하는 자세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로 가야 할 일이 있었다. '갑'의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일, 회사는 사원 나부랭이 었던 나를 사지로 몰아세웠다. 부장님 두 분을 모시고 갔으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냥 부장급이 왔다는 사실을 '갑'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동행했을 뿐. 양쪽에 부장님을 끼고 사원 나부랭이가 대표로 자료를 설명했다. 그런데.. 뜬금포가 날아왔다.

"에이 시x"

현황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욕이 날아왔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한 건 아니었다. 본인이 듣다가 답답해서 욕을 시전 했다. 현재 상황이 많이 답답하다는 표시겠지.

그런데 '앞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만만했으면 그렇게 큰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시x'을 날렸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을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목격하고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의 '갑'이었다면 욕은 커녕 한참 어린 나에게 사대의 예를 갖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겠는가.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윽박을 지르질 않나, 오만 짜증을 가득 품고 사람을 열 받게 하질 않나. 수련이 덜 돼서 그런지 이따위 갑질은 적응도 안 되고 매번 화가 불같이 일어난다.

그러나 표출하진 못하는 게 현실. 더러운 세상, 이럴 땐 자연인이 되고 싶다. 자급자족을 꿈꾸며.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다양한 요구와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일 자체로 나를 괴롭게 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일을 했다고 해도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면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게 현실.

더 비참한 현실은 완벽하지 못한 '나'. '갑'을 이기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무능력한 나는 함부로 '갑'과 싸우려 들지 않는다.

전화 혹은 대면 상황에서 갑질이 시작될 때 나는, 영혼을 저 안드로메다로 피신시킨다. 그리고 감정을 빼고 최대한 평온하게 대응한다. 이는 나의 '기분 나쁨'을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기분 나쁨'을 드러내는 것이 최악의 대응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네, 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네, 네, 네, 죄송합니다. 네, 네, 네, 네, 수정하겠습니다.'를 반복하면 갑질도 지속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갈구려면 끊임없이 말을 생산해야 되는데 이는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네, 죄송합니다.'로 끝낼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효율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갑질이 시작될 때 나는 미생의 대사를 되뇌인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 상황을 잘 넘어가자. 그리고 후속처리 후 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사과 한 마디 남겨주자. 그러면 '갑'도 뭔가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사람새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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