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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땐땐 Feb 18. 2021

무덤에서 벗어나는 법

자기계발


우리 팀에 들어올 신입사원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생각하다,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다.

기획업무와 회사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는데, 웬걸 모든 글의 절반 가량이 회사 욕으로 채워졌다.

좋은 말 하려다 퇴사를 종용하게 되었다.


다시 우리 회사 풍경을 정리하자면,

1. 일을 미루고 책임을 전가하는 게 최고의 덕목이라는 믿음 하에 직원들의 쌍욕 및 뒷담화 스킬이 날이 갈수록 탄탄해지고 있다.

2. 반성을 위해 꼭 필요한 수치심, 부끄러움과 같은 감정들은 저 멀리 버려두고 모르쇠를 일관하며 일을 하지 않고 있다.

3. 혹여나 찝찝한 일이 있으면 앞다투어 상무님 실로 올라가 누군가를 고자질한다. 고자질이란 표현도 아까울 정도다.

4. 조직 내 불신이 극에 달해있다.

5. 욕을 더 하자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모자라기 때문에 내 손가락 보호를 위해 참기로 하겠다.


회사 입사 후 사원 나부랭이인 나에게 참 많은 업무가 주어졌다. 당시 나는 '사원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경험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업무역량도 많이 넓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발전은 느끼지 못할뿐더러, 많은 업무를 나에게 던졌던 회사의 불합리함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한 때는 이 불합리 속의 한줄기 희망이 되고자 '파이팅 넘치게' 일을 하기도 했으며, 불신이 판치는 조직문화 속에 신뢰의 꽃을 피우기 위해 '소통의 창구'를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기회다 싶어 나에게 더 많은 일로 보답했다. 결국 내 무덤을 내가 파고 나는 그 속에 안치되고 말았다. 

오만이었다. GG.


숨 막히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왕 무덤에 들어온 거 좀비로 사는 방법이 있다. 영혼을 안드로메다에 모셔두고 회사로 출근하여 고민하지 않고 바보가 되어 맹~~하게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눈 뜨면 출근하고. 이 방법을 가장 원하긴 하나, 이미 나에게 주어진 업무들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배를 째기가 참 부담스러운 위치다. 업무를 좀 바꿔달라고 매년 요청하고 있으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제안은 들었다. '기존 업무 들고 가면 옮겨줄게.' ㅡㅡ

이 곳에서의 좀비 생활은 굉장한 특권이라 그 마저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덤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직'이다. 그런데 이직한 곳이 또 다른 무덤이라면, 아니 지금 보다 훨씬 더 끔찍한 무덤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직 후 이 곳을 추억하는 인생, 비참하기 짝이 없다. 더 좋은 곳을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사실 더 좋은 '곳'이 본질이 아니다. 더 좋은 '내'가 되는 것이 본질이다.

바꿀 수 없는 조직을 원 없이 원망하다 보면 이 조직을 탈출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한다. 온 정성을 다해 욕을 퍼부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무능력한가.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원망하고 무기력해지는 이따위 악순환은 어떠한 유익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과 함께 실컷 욕을 하는 것은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줄 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진 못한다. 순간의 카타르시스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삶의 변화'가 아닌가. 나는 '외부환경'이 변화되어 삶이 바뀔 거라 기대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외부환경은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를 바꾸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릴 '실력'이 생기면 조직에 끌려다니지 않고 조직을 선택할 수 있다. 불합리 앞에 당당할 수 있다.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나'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게 쉽게 '나'를 바꿀 수 있었다면 키보드 워리어로 회사 욕을 이렇게 싸지르고 있겠는가. 참,, 그럼에도 지랄 같은 회사를 바꾸느니 차라리 '나'를 바꾸는 데 베팅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영향 미칠 바에 자기 계발이라도 해서 '아는 척, 성장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그나마 정신건강에 더 좋지 않겠는가. 


요즘 사업관리 분야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데이터 관련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케팅, 데이터' 관련 책을 매주 한 권씩 읽고 있으며, SQL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인터넷 강의도 수강할 예정이다. 

이렇게 살면서도 사실 매일 의심한다. '이렇게 하면 뭐가 변화될까.' '깨작깨작거리다 또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진 않을까.'

이 의심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지 못했다. 그러나 최소한 읽은 책에 대해 아는 척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는다. 실제 지인들에게 이러이러한 책을 읽고 있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대고 있으며 기회만 되면 쥐꼬리만 한 지식을 설파하고 있다. 이런 사기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자기 계발을 포기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언젠가 사기가 아닌 '실력'이라는 게 진짜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마음에 다시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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