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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땐땐 Feb 04. 2021

돈의 힘

회계지식의 필요성

타 부서 회의에 가끔 불려 갈 때가 있다. 팀장, 차장을 부르기에는 부담스러우니 막내인 나를 부르는 것이다. 부르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획팀원으로서의 의견을 물어보기 위함도 있고 간혹이지만 책임전가를 위해 부를 때도 있다. 그 속셈이 야속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내가 막내뻘인데.

회의를 시작하면 본인들끼리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나는 토목이나 전기, 소프트웨어 등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지식이 없어 디테일한 의견을 낼 수 없다. 그래서 가만히 듣고만 있다. 그러다 회의 막판이 되면 내가 왜 이 기나긴 시간을 버텨야 했는지 알게 된다.

박 대리야, 이거 가능하겠니?

'이거'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아무리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하더라도 내 판단의 제1 기준은 돈이다. 돈의 힘은 강력하다. 나는 막내 '나'부랭이지만, 돈의 힘을 업은 나의 대답은 매우 강력해진다. '예산이 부족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잔여 예산 검토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대답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조금만 깊게 파고들면 검토할 사안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무모델 분석은 기본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회계법인 컨설팅까지 필요하다. 이처럼 돈은 의사결정의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따라서 기획팀원은 무엇보다 재무적 사고를 장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회계는 경영의 언어니깐

면접 전 학교 형님들과 옹기종기 모여 회사 감사보고서를 보고 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대충 봤기 때문이다. 손익계산서에 나오는 당기순이익과 매출 구성 정도만 봤었는데, 그 내용으로는 회사 속사정을 결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의 당기순손실은 200억원이었다. 순이익이 아니라 순손실이다. 나는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그 숫자를 보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입사하자마자 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생각 정도는 해야 되지 않았을까? 다행히 면접 때 관련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러한 내용의 질문이 있었다면 나는 말 그대로 나가리였다. 우리 회사는 매년 500억원가량이 무형자산 상각비로 계상한다. 쉽게 말해 실제 집행되지 않는 돈 500억원이 매년 손익계산서상 비용으로 잡힌다는 것이다. 300억원을 벌어도 무형자산 상각비를 감안하면 당기순손실 200억원이 된다. 이 단순한 사실도 제대로 인지를 못했는데,,, 역시 내가 합격한 건 운이 좋았다.(지금은 그게 운이 좋았던 게 맞는지 모르겠다....) 더 당황스러운 문제들도 많았다. 내가 관리하는 실제 집행 이자금액과 손익계산서상 이자금액이 달랐던 것이다. 이건 또 왜 이러나,, 유효이자율 때문이었다. 법인세도 실제 집행된 것과 달랐다,, 이연법인세 때문이었다. oo 달랐다,, oo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계지식을 야매로 습득했다. 문제집을 보고 강의도 들었지만, 4년간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배워야 하는 많은 양을 어찌 나 같은 조무래기가 다 이해할 수 있으랴. 그냥 내 식대로 이해했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다.

 재무상태표: 내 돈(자본)과 남의 돈(부채)으로 돈을 벌기 위해 뭘(자산) 샀니?

 손익계산서: 얼마 벌고(매출) 얼마 쓰고(비용) 얼마 남았니?(당기순이익)

 현금흐름표: 들어온 돈 얼마고 나간 돈 얼마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편안하게 개념을 정리하고 나면,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회계용어들이 나름 정리가 되고 숫자 속 의미들도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감사보고서는 회사에 관한 정보를 숫자로 표현해준 것이다. 그래서 어떤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이해했다는 것은 그 회사의 사업 구조를 큰 맥락에서 이해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업의 전반적인 구조를 제일 잘 파악해야 하는 기획팀원으로서 회계지식은 꼭 필요하다. 더 나아가 재무모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사업에 대한 가치평가, 수익률 분석, 환경변화에 따른 영향검토, 가격결정 등 경제적 이벤트(사업)에 대한 재무성과를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도 쉽게 예를 들면, 수입과 비용을 추정해서 수익률을 예측하거나, 수익률 확보를 위해 가격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재무적 검토를 바탕으로 사업의 타당성을 분석해야 한다.

주식회사의 제1목 표는 이윤추구다. 따라서 어떤 사업에 대한 재무적 검토 결과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가장 명확한 판단 근거가 된다.

나처럼 당기순손실 200억원의 의미를 모른다면 우리 회사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어떠한 사업도 진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바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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