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 난무하는 인생
코로나-19를 겪으며 더욱 뼈저리게 알게 된 사실. 세상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아무리 마스크를 잘 쓰고 온몸을 청결하게 유지하더라도, 나와 함께 사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그러하지 않는다면 내 수고는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나의 수고와 무관하게 타인에 의하여 코로나에 걸리게 된다면? 그럼 나는 세상에 발현한 바이러스와 그 바이러스를 옮긴 다른 이를 탓하며 좌절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는 걸까?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면, 지선우(김희애)에게도 여다경(한소희)의 등장은 코로나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조심하려 애써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 삶에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존재. 내가 나와 직접적으로 닿을 일 없게 조심하지만, 나와 함께 사는 가족에게 닿아 결국 내 삶에 침투해버리고 마는 그런 것 말이다.
극 중 지선우와 아들 준영이는 물론이지만, 어쩌면 이태오와 여다경 역시도 사고를 당한 거라 생각한다. 초반부터 의도적으로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악의를 품었던 것이 아니니까. 그저 빠져서는 안 될 사랑에 빠져버린 사고를 당한 것뿐.
문제는 후속 조치이다. 우리가 어떤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그 사고를 그저 '어쩔 수 없었다.'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버린다면,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사고 그 자체는 어쩔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한 수습은 우리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세상은 나만 사는 공간이 아니다. 나 외의 수많은 것들이 복잡다단하게 엮여 세상을 이루어가고 있으므로, 그 어떤 사람도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변수를 원하는 대로 제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의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고 해서 그 변수를 받아들이는 데에 그친다면, 그건 스스로의 주체성을 포기해버리는 행위이다. 그저 단순히 반응하는 것에 그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잠시 좌절할 수는 있겠지만, 그다음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반응이 아니라 선택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선택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삶을 '계획'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선택'들로 이루어간다. 그렇게 스스로가 했던 선택들의 합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고 말이다.
물론 갑자기 예상치 못한 폭풍우가 몰아쳐 온 몸이 쫄딱 젖은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제 아무리 방어운전을 해도 갑자기 들이 받치는 경험을 하면 억울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은 길고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매 순간 행복할 순 없겠지만, 내가 걸어가는 많은 순간들을 이왕이면 스스로를 괴롭히며 지내는 것보단 긍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야 내 마음이 편한 것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지선우와 그의 아들이 겪는 행보를 보며, 얼마나 억울할까 가히 상상할 수 없었고 마음이 아팠다. 드라마의 모든 주인공들이 다 사고를 당한 거라 보지만, 지선우가 당한 사고는 과실을 나눌 필요도 없는 후방에서 박아버린 100% 피해자 입장의 사고이니까.
하지만 이미 사고는 났고, 그녀는 스스로를 위해 최선의 것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누구도 결코 이성적이 될 수 없을 거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선택해야 한다. 내가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 난무하는 인생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을.
어떠한 상황이 닥치든, 결국 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결국 나뿐임을 상기시킨 드라마,
부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