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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서린 Apr 30. 2020

나의 첫 재테크, 명품 장지갑 구입

<부자들은 왜 장지갑을 쓸까>라는 책을 읽고 명품 장지갑 구입한 이야기


스물아홉 살, 곧 삼십 대가 된다는 압박감으로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떠오른다. 이루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 서른이라니. 후회와 자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예쁘고도 아쉬운 내 이십 대의 마지막 일 년. 그러나 언제 그런 부담감을 안고 살았냐는 듯, 막상 서른이 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앞자리는 +1이 되었지만 뒷자리는 -9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치 9년의 시간을 번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새 시작의 설렘만 지닌 서른과는 달리, 서른한 살이 되자 진짜 삼십대로 진입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스물아홉에 가졌던 압박이 다시 스멀스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삼십 대면 뭐라도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가장 먼저 떠오른 고민은 역시 돈이었다. 하고 있는 일을 그저 열심히만 한다고 나에게 재정적 자유가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월급, 고만고만한 생활. 언제까지 이렇게 고만고만하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렇게 서른한 살을 기점으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부자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친한 지인 중에는 조언을 얻을만한 부자가 없었으므로 책의 도움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가서 부자와 관련된 책들을 사들였고, 그중 가장 처음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은 <부자들은 왜 장지갑을 쓸까>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부자들이 장지갑을 쓰는 이유에 대해 기술해놓은 책이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돈에도 인격이 있어서 돈을 사람 다루듯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장지갑을 쓰는 이유도, 예를 들어 만약 반지갑을 사용하면 인격체를 가진 돈이 지갑 속에 들어갔을 때 반으로 접힌 상태로 지내야 하니 불편할 거라는 근거에 기인한 것이다. 더불어 아무 장지갑이 아닌 '비싼' 장지갑이어야 마치 우리가 고급 호텔에 들어가듯 돈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싸다는 건,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꽤 귀여운 일인데, 아무튼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장 처음으로 시도한 일은 저축을 하는 것도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 명품 장지갑을 사는 일이었다. 부자가 되는 방법서 중 가장 처음으로 접한 책이 그러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소위 명품이라는 것을 하나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책을 빌미로 명품을 사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므로 더 빠르게 행동력을 발휘했는지도 모르겠다.


책 내용 중 지갑 가격의 200배가 곧 내 연봉의 금액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미래의 연봉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재정 수준을 크게 엇나갈 수 없었으므로 명품 중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상품을 물색했다. 내가 구매한 지갑 가격은 635,000원인데, 200배를 하면 127,000,000원이다. 연봉 1억 2천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취향과 무관하게 당시 그나마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의 명품 지갑을 구매하게 되었다.




지갑을 사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내 연봉은 1억이 되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책 한 권 따라 한다고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세상에 부자가 아닌 사람이 없겠지.' 하며 허망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는 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 부자의 행동만을 따라 하고 있었다.  


책에서 제시한 지갑 사용법 중, 지갑 속에 영수증이나 동전 같은 것을 막무가내로 넣지 말고 지폐를 넣을 때도 가지런히 같은 방향으로 넣으라는 이야기가 있다. 돈에게 깔끔하고 정돈된 호텔을 제공하라는 의미인데, 나는 의도하지 않아도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즉 나에겐 습관성 깔끔함은 있었지만, 돈에게 편안함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도성이 부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따라 해야 하는 건 결과값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 결과를 이룰 수 있었던 과정에 내포된 '무엇'을 알아야 우리 역시 그 결과를 이룰 수 있다. 장지갑을 써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장지갑을 쓰는 의도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돈에게 지니는 태도, 더불어 그들이 돈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싼 지갑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그 지갑을 사용할 만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스스로에 대한 초점을 가난이 아닌 부(富)에 고정하는 것. 귀하고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방치하지도 말고, 적당한 관심을 가지고 돈을 존중하는 것. 이런 의도 없이 단지 비싼 장지갑을 사용하는 건, 그저 부자가 하는 하나의 소비를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다.




5년 전 나의 첫 재테크는 명품 지갑을 샀던 것이다. 어찌 보면 재테크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시작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지금의 나는 투자까지 이어진 진짜 재테크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책에서 말한 대로 지갑 가격의 200배 연봉을 달성한 해도 생겼다. 표면적인 것만 따라 하는 건 아무 소득이 없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내가 다짜고짜 어떤 투자 방법을 공부하기 전에 '이런' 시작을 하게 된 건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와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와 마인드가 기반되지 않은 행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 635,000원짜리 지갑이 알려준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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