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기서린 May 17. 2020

기억의 각인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생생하게 저장하는 방법

살다 보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앞에 앉아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마음의 자유를 경험할 때. 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차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드라이브를 하는, 그런 순간들. 마음이 행복의 벅참으로 가득 차오르는 순간, 그 찰나를 잊지 않고 기억 속에 담아놓고 싶은데. 우리의 기억은 시간의 힘 앞에 무력해져 버리고, 그저 미래의 어느 날 '그땐 그랬지.' 하는 희미한 추억에 의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나는 서울 태생인데도 언제나 자연을 그리워했다. 주말마다 집 뒷동산에 올라 아카시아 잎과 함께 놀던 기억 때문일까. 방학이면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외진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청개구리를 잡고 놀던 기억 때문일까. 어딜 가도 빽빽한 사람들과 갈수록 높아지는 빌딩들, 그리고 자연의 빛보단 휴대폰 불빛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날들이 내게 끝없는 '자연 갈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여백을 찾아 헤매며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깊은 해방감을 느낀 건 '제주'에서였다. 깊고도 넓은 바다로 둘러싸인, 그래서 자연이 나를 감싸는 듯 느껴지는 섬. 빌딩보단 산(오름)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연색을 가진 도시. 내겐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자유였다. 그 자유를 잊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뿐이었고.


그런데 나는 항상 자유를 기억에 담아내고자 진짜 자유를 희생하고 있었다. 자유의 순간을 온전히 누리기보다, 그 순간을 카메라 화면으로 담아내는 데에 시간을 쏟았다. 얼마 전에도 자유를 느끼고자 또 제주로 떠났지만... 나는 서울에서도, 그리고 제주에 있는 그 순간마저도 여전히 화면으로 제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동화되면서도, 이 기억을 오래도록 담아낼 순 없을까?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 지금을 잊고 싶지가 않아.'





삶이 정말 신비로운 건, 내가 어떤 질문을 품으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궁금하다고 바로 답이 생겨나는 건 아니지만. 그 질문을 끌어안고 살아가다 보면 결국, 예기치 않은 순간 답이 내게 달려온다. 보통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통해 답이 주어지는데. 이번엔 사람을 통해서였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을 때,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 하나 알려줄까요?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그 순간에 존재할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상상해보는 거예요. 내가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이동했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눈을 떠보세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이 장면, 지금 귀로 들리는 이 소리, 지금 느껴지는 이 공기의 냄새와 모든 것들이 그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추억하는 과거라고 상상해보는 거죠.
그럼 진짜 미래의 어느 순간에서 지금을 추억할 때, 이 모든 생생함이 각인되어버려서 결코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존재하게 될 거예요.



그때부터 카메라를 내려놓고, 원하는 모든 순간마다 상상해보았다. 지금 이 모든 순간이 내가 미래의 시점에서 추억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추억이라고 치기엔 너무 생생했고, 덕분에 나는 그 생생함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지금 서울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각인시킨 순간들을 기억하면 그때 그 현실에서 바라보던 그 장면만큼이나 생생하게 그 순간이 re-play 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카메라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순간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 그러면서 펼쳐지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경험해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번지는 그런 순간들을 저장해놓으려는 욕심 또한 삶을 이루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내게 주어진 그 순간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각인시킬 수 있는 이 방법을 소중한 순간마다 잘 꺼내어 사용해야지. 그래서 내가 걸어온 길도, 내가 걸어갈 길도 풍성한 그런 삶을 살아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첫 재테크, 명품 장지갑 구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