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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 희 Jan 20. 2023

너희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엄마와 인정받고 싶은 할머니, 둘을 닮은 나

세 딸들과 엄마의 신경전이 날이 갈수록 조금 더 과격해지는 걸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는 참 안타까웠다.

그 속내를 확 알기 전까지는 사실 나이 든 할머니에게 화부터 불쑥 내는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근데 상처받은 엄마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참 부모와 자식 관계란

역시나 쉽지 않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같은 말을 반복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얼마나 젊었을 시절의 할머니가 멋진 여자였는지, 얼마나 스타일이 좋았는지,

할아버지의 내조를 얼마나 잘했고, 자신이 똑똑했는지 등등등..


그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있는데 대부분이 자랑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얼마나 멋있었다고?!'


나는 사실 지겹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안쓰럽게 느껴졌지.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인정 욕구를 쏙 닮아서

누구로부터 어떤 말을 들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 같은 자존감을 알아서

이 말을 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감히 알고 있노라 얘기할 수 있다.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가족들의 인정이 필요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카페 주인이 나보고 할머니는 어쩌면 그렇게 멋지고 꼿꼿하시냐더라,

동창 모임을 갔는데 늙어서 허리가 다 굽은 친구가
나보고 어쩜 너는 아직도 곱고 건강하냐더라


이 말을 왜 그렇게 자주 말하겠어.

밖에서 아무리 인정을 해줘도 소용이 없으니까 그런 거다.

사실은 딸들에게서, 남편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 거다.

'들었지? 나 이런 사람이라니까 왜 너네만 몰라 왜'라는 속내를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하는 건

독불장군 같아 보이는 할머니가 자신의 가장 여린 면을 지키기 위해 세운 방패다.


나는 할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말로 하는 표현이 애당초에 약했던 사람이기에

아마도 '역시 당신 덕분에 내가 너무 잘됐어 고마워 당신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말을

했을 리가 없었을 거고.. 


남자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이 받지 못했던 갈증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았을 무시를

내 딸들은 절대 받지 않게 하겠다는 신념이 생겼을 할머니.

세 딸들을 독하게 밀어붙여서 그 당시에는 흔치 않게도 셋 다 이공계로 대학에 진학시켰고,

멋진 커리어를 가진 여성으로 만들어 냈으니, 아이들이 당연히 나에게 고마워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을 텐데.

엄마한테 다들 반발심만 가득하다.

나이 먹어서까지도.


나는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너네한테 그렇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하고 싶다는 거 다 해주면서 살게 해 줬는데,

아직도 나는 너희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왜 엄마에 대해서는 인정해주지 않아?



할머니가 밖에서 멋진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거기서도 인정받지 못했을 때 스스로가 얼마나 비참한 기분을

느낄지 본능적으로 알아서 그런 거다.

나는 그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으니까.


손녀인 내가, 엄마를 꼭 닮아 보이는 내가

할머니에게 계속해서 사랑을 표현해도 사실 할머니의 밑 빠진 독을

채워줄 수가 없다. 그 사랑은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아직도 사랑과 인정이 너무 필요한데

그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딸들에게 너무 상처를 많이 줘서

상처받은 딸들은 그들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아마 진짜로 인정해 주기는 어려울 거다. 그것도 이해가 간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 엄마도 좀 받을 필요가 있어하는

억한 심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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