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글쓰기 1
예술을 평하는 행위는 유독 대중음악 분야에서 시끄러운 듯하다. 특히 힙합 장르에서 말이다. 힙합엘이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평론가에 대한 조롱이 왕왕 있다는 걸 꽤 오래전부터 인지해왔다. 조롱하는 이들의 논지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1. 남이 피땀 흘려 만든 창작물에 어떻게 감히 평가를 하는가.
2. 음악은 듣고 즐기면 되지 무슨 평가가 필요하냐.
3. 개인마다 감상이 다른 건데 어떻게 자기들 기준만 옳다고 말하느냐.
위의 지적들이 누군가에겐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결코 수긍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감히 말하건대, 음악은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평가’라는 어휘에 담긴 흔한 인식이 맘에 걸리긴 한다. 그 단어 속에는 앉아서 팔짱 낀 채 대상을 내려다보는 자의 거만함이 있다. 또 대상을 줄 세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기계적인 액션이 있다. ‘평가’라는 어휘 속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숨어있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음악 평론 혹은 음악글에서 이러한 뉘앙스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음악에 대한 리뷰 혹은 평론은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한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필자들 중 자신이 잡은 펜을 권력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뮤지션 위에 올라설 생각이 없다. 오히려 뮤지션들이 만든 음악을 더 많은 리스너와 공유하기 위해 펜을 잡는다.
다시 돌아와서, 평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평론은 ‘장’을 만든다.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별로라고 생각하는지부터, 한 작품이 당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까지 의견을 나누는 장 말이다. 일반 커뮤니티가 그런 장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맞다. 하지만 평론은 더 명확하고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려면 애정과 함께 음악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필요하다. 음악을 듣고 즐기는 데서 끝나는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한편으로 평론의 어투가 독선적으로 느껴질 여지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저 게임의 규칙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는지가 관건인 게임. 음악을 평가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 기준만 옳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설득력 있는 ‘다른 의견’을 유도할 뿐이다.
뮤지션들 입장에서 평론이 자신감을 죽이고 위축되게 만드는 글일 수도 있다는 말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힙합 뮤지션들 중 몇몇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인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분명히 몇몇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음악을 평가하는 행위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건 결과적으로 뮤지션 본인에게까지 좋지 않다. 자신의 음악을 분석적으로 듣고 그것을 텍스트로 남기는 행위, 더 나아가 한 작품을 둘러싼 의견의 장을 만드는 행위는 귀중한 것이다. 뮤지션 본인이 나아갈 음악 커리어에도 큰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아무나 그런 일을 해주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평가는 개별적인 앨범 한 장, 뮤지션 한 명만 훑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을 끌고 오기도 하고 동시대 다른 음악가들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음악을 평가하는 행위는 과거와 현재의 음악 작품 간에 관계망을 그리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