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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Apr 13. 2022

당연하지 않은 엄마의 요리


요리를 함에 있어, 정확히는 반찬을 만드는 데 있어 김종현(남편)과 내가 맹신하며 선생님으로 받드는 분이 있다. [50년 요리비결]이라는 (이름부터 신뢰도가 상승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칼을 잡으신 분이 아닌가!) 채널의 주인, 유튜버 '윤이련'선생님이다. 내가 즐겨 만드는 반찬인 두부조림과 메추리알 장조림, 콩나물무침 등은 대부분 윤이련 선생님의 레시피다. 그 외에도 냉장고 털이를 하기 위해 검색창에 식재료 이름을 친 뒤, '윤이련'만 덧붙이면 웬만한 한국 음식들은 다 나온다.


이 채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촬영 편집을 담당하는 사람은 윤이련 선생님의 따님인 걸로 보인다. 벌써 300개가 넘는 레시피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마치 딸이 개인적으로 소장하려고 주방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영상을 남겨놓은 듯 편안하고 정겹다. 그와 동시에 타 요리 유튜브에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난 디테일과 내공이 느껴진다. 아주 간단한 반찬 하나를 만드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콩나물무침을 할 땐 삶지 말고 쪄야 한다던가, 두부조림을 할 땐 두부를 기름에 지지다가 크게 썬 양파를 옆에 놓아 같이 구워준다던가, 감자조림을 할 땐 마지막에 물엿 한 스푼으로 코팅을 해준다던가 하는 팁 등. 오! 하는 지점들이 자연스럽게 영상 곳곳에 심겨있다.


윤이련 선생님의 정겨운 사투리와 모녀의 티키타카도 꽤나 재미있어서 마치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요리하는 모녀의 주방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본격적인 조리와 함께 중간중간 말씀해 주시는 식재료에 관한 상식 (꼬막은 입이 벌어져 있어야 신선한 것이고 바지락은 입이 다물어져있어야 신선하다 같은.)과 제대로 된 보관법들도 아주 실용적이고 큰 도움이 된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가장 두꺼웠던 책인 '요리 대백과'가 떠오른다. 유튜브 같은 건 없던 시절 우리 엄마는 그 책을 이따금씩 보며 음식을 만들어 우릴 먹이셨다. 새벽에 일어나 아빠와 언니, 내 것까지 매일 도시락 세 개를 싸느라 (동시에 아침상까지 차려 먹였다.) 고생했을 엄마를 생각한다. 내가 집 반찬 중에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연근조림과 우엉조림, 무말랭이 같은 것이었다. 대학 때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반찬가게에서 연근조림을 사다 먹었던 적이 있는데 짙은 갈색빛의 먹음직스러운 색깔과는 다르게 너무 달기만 하고 질기고 맛이 없었다. 그보다 연한 색에 살짝 아삭한 엄마의 연근조림이 내 입에는 딱이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면서도 자주 먹지 못하는 반찬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파김치'였다. 우리 엄마는 파를 안 먹기 때문이다.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닌데 그냥 싫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 집에서 아주 잘 익은 파김치를 맛보고 눈이 동그래진 적이 있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밥 한 그릇을 조용하고도 빠르게 해치웠다. 그날 밤 나는 친구 집에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가 파김치를 조금만 나눠주시면 안 되냐고 부탁하는 궁상맞은 꿈을 꾸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손맛이 되게 좋은 편은 아니다. (엄마 미안.) 그럼에도 엄마는 그 시절 기혼 여성에게 요구되던 역할을 묵묵히 하셨던 거다. 남편과 자식들을 매일 먹이기 위해 말이다. 언젠가 생닭 손질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원래부터 이렇게 식재료 손질을 잘 했어? 하고. 그러자 엄마는 결혼 전까지 본격적인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할머니는 주방 일을 엄마에게 가르치지 않으셨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시집가서 못하면 어쩌냐고 하셨단다.

언니를 낳고 모유 수유에 어려움을 겪던 결혼 초 어느 날, 그럴 때 좋다는 가물치를 사다가 도마 위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단다. 엄마는 생선 손질을 할 줄 몰라 곤란했는데 거기다 가물치가 너무 징그러워서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고 했다. 요리에 재미를 느끼지도 않았고 재능도 없었던 젊은 엄마는 이내 눈물을 닦고 커다란 칼을 들었을 것이다.






2017년 한국 영화 [소공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미소는 결혼한 친구 현정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시모부와 남편의 식사를 챙기며 집안일을 담당하는 며느리인 현정은 미소에게 묻는다.


  "아까 떡국 어땠어?"

  "짜더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람은 보람대로 없고."

  "금방 늘 거야..."

 

애써 위로하는 미소에게 현정은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한다.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 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현정의 시아버지가 30년 동안 중국집을 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현정은 시아버지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현정의 대사는 기혼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품어봤을법한 질문이다. 짜디짠 떡국에 물을 부어가며 먹으면서도 시가 식구 중 누구도 주방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은 현정을 '요리에 흥미와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응당 집안일을 도맡아야 할 며느리'로 보기 때문일 거다. 즉 '사람'이 아닌 '역할'로 보았기에 생기는 일이다.






엄마는 10여 년 전 뒤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성격 검사를 하신 적이 있단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이 결과를 듣고 엄마는 새삼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니까...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거다. 평범한 주부로서 당연하다 여겼던 일상들이 수치와 문장으로 나타나니, 그 순간 지나온 삶이 잠시 객관적으로 보이셨던 거 같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일을 했다. 직업은 자주 바뀌었다. 배틀 짜기, 밤 까기, 핸드폰 판매원, 출판사 직원 등등 엄마가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을 전전해야 했던 이유는 집안 일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빠와 우리를 돌보며 날로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엄마는 일하면서도 항상 집을 청결히 유지하셨고 우리를 정말 잘 먹이셨다. 네 식구의 식사를 하루에 세 번이나 매일 챙긴다는 건 생각해 보면 너무나 대단한 노동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요리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을 평생 해오신 거다. 심지어 아빠가 목회를 시작하고 '사모님'역할까지 더해지면서 집으로 찾아오는 많은 손님들의 식사, 매주 성도들의 식사, 교회 건축 때 인부들을 위한 식사와 간식들 등등 큰 규모의 식사 준비도 항상 해오셨다. (교회 내 '여성 노동'에 대한 생각은 추후에 자세히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요리에 재능이 있고 흥미가 있는 사람이 해도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없는 에너지도 만들어 써야 했던 그 노동들을 엄마는 그냥 해왔던 거다. 모두가 당연한 듯 엄마에게 그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직업으로서의 주부를 생각한다. 퇴근도 없고 월급도 없는 그 일에 대해. 아무리 잘 해도 '기본'이 되어버리는 그 일에 대해. 내 남편 김종현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마트 장 보는 것을 즐겨 하며 주방을 자기 영역으로 생각한다. 어디 가서 이 사실을 말하면 대게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김종현을 칭찬하거나 나를 질타하거나. [소공녀] 속 현정의 말대로 그냥 잘 하는 사람이 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만약 내가 김종현 보다 요리하는 것을 즐겨 하고 주방을 내 영역으로 둔다면 그걸 특별히 칭찬하고 김종현을 질타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마음이 뾰족해진다.






요리에 별다른 흥미와 재능이 없는 내가 윤이련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며 반찬 만드는데 재미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도 나에게 집안일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엄마는 요리를 아주 잘 하신다. 여전히 흥미는 없으시지만 그럼에도 매일 같이 해오신 결과다. 오늘 엄마와 통화를 하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음식과 돌봄들이 결코 당연한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요리'라는 주제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하다 보니 엄마 안에 쌓여있는 서러움과, 그럼에도 그 시간을 온전히 지나온 사람이 가지는 안도와 감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요즘 엄마는 정말로 흥미가 있는 일을 찾아 취미활동을 하신다. 손뜨개로 가방도 만드시고 캘리그래피와 그림도 배우셔서 예쁜 꽃 그림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역할이 아닌 개인으로 존재하는 순간의 엄마를 보는 것이 나는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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