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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니를 찾아서 May 23. 2019

아프리카 종단 여행

최종 목적지,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하다.


색이 바랜 플란넬 셔츠와 검은색 츄리닝, 다 뜯어진 맹꽁이 신발 그리고 올이 반쯤 풀린 팔찌.

아프리카 종단 여행 초반, 우간다에서 만나 함께 여행을 하였던 예술인 친구가 안전과 행운을 빈다며 내 영어 이름 DYLLN을 자수로 놓은 팔찌를 선물해주었다. 2달 반의 아프리카 종단 동안 나는 이 팔찌를 항상 차고 있었다. 우간다를 떠나기 전, 우간다 친구의 '팔찌가 너를 지켜줄거야!'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너무 아둔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누추한 차림에도 내 캐리어 안에는 어머니가 사주신 빳빳한 회색 양복이 들어있었다. 어느덧 나는 10개 국가를 지나 마지막 여행지인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하였다.


바오밥 나무로 유명한 마다가스카르 모론다바에서 석양을 보며 지난 2달 간의 순간들이 떠올렸다.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광활함을 선물해준 케냐의 마사이마라부터 우간다에서 만난 예술가들, 탄자니아에서 만난 슬럼가 래퍼들, 말라위를 떠나는 날 버스에서 먹으라며 도시락을 싸주신 한식집 아주머니. 나는 마지막 여행지 마다가스카르에서 지난 6개월의 아프리카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다.


“하필 왜 아프리카야?”


“나는 가난한 삶이 궁금해.”


“너는 그렇게 가난하지 않잖아.”


에티오피아에서 인턴을 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친구들이 내게 했던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굳이 아프리카를 지원한 이유를 물었고, 나는 ‘가난’에 관심이 있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대답을 하였다. ‘가난한’ 아프리카에 대한 호기심은 결국 나를 아프리카로 이끌었고 나는 4개월 간의 일을 마친 후 두 달째 아프리카를 여행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을 한 후 몇 년 동안 진로를 고민하였지만, 쉽게 해결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진로 고민은 아프리카에서 약자들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역을 하고 4학년이 되자 동기들은 취준을 위한 스펙을 하나하나 쌓으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수년 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꿈을 꾸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에서 일을 할 기회가 왔고, 나는 4개월 간 에티오피아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일은 ‘가난’을 고민하기에 충분하지 못하였다.


아쉽게도 나는 꿈을 꿈으로 남겨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가난'은 나와 무관한 일이며, 나의 잘못으로 기인된 것도 아니며 뿐만 아니라, 내 노력으로 바뀔 것이 하나 없다는 주변인들의 충고에 어느덧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꿈꿔왔던 아프리카에 온 이상 꿈을 위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포기하는 것은 내 젊음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모종의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하여 머릿속에서 구상 중인 프로젝트를 실행해보기로 하였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마다가스카르에 책 기부를 하는 것이었다. 마다가스카르 책 기부를 담당하는 NGO의 아프리카 본부가 케냐에 있어서 첫 여행지가 케냐가 되었고, 이에 따라 마지막 여행지가 마다가스카르가 되었다.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

 마침 일러스트레이터께서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셨고, 책 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버스를 타고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케냐-우간다-르완다-탄자니아-말라위-잠비아-짐바브웨-보츠와나-남아공을 육로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자연을 배경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 리워드를 완성하였다.
당시 프로젝트 홍보로 쓰였던 엽서

 여행 중 어려움도 많았지만, 현지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여행이 마친 후 현지인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어려움이 닥쳐도 프로젝트에 대해 현지인들한테 많이 말해줬었고, 현지인들은 특이한 여행자에게 기꺼이 도움을 줬던 것 같다. 주로 호스텔에서 묵었는데 여기서 NGO에서 봉사를 하는 미국, 유럽에서 온 대학생들과 여행을 다니며 '가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지나 이 친구들이 본인들이 봉사를 했던 NGO에 나를 사진작가로 소개를 해주며, 다양한 나라를 비교적 안전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작년 7월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수도에 책을 기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행 중 만난 미국인 영어 교사를 만나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슬럼가의 사람들은 자신의 어렸을 적 외모를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그 이유는 어렸을 적 사진이 단 한 장도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사는 내게 책 기부와 함께 아이들의 독사진도 찍어주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을 하였고 나는 흔쾌히 응하였다.  나는 책을 기부하는 날, 172명의 아이들에게 독사진을 선물해주었다.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위치한 '아이나 피티아바나' 학교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하는 것은 쉽지도 않았고, 때론 위험하기도 하였다. 나는 아프리카의 열악한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하였고, 그 해결책을 '책'에서 찾았다. 이러한 신념으로 시작한 아프리카 종단 여정은 때론 어려움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움을 줬던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있었다. 여행 도중 만난 현지인들에게 아프리카 슬럼가의 교육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괴짜 여행자는 그들에게도 특이했던 모양이다.


돌아보면, 나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던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나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여행 중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여행지를 하였고 앞으로 두 달 반 동안의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기록해보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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