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깨우친 도로위 언어.
어릴 적 아빠가 운전하시던 스포티지 뒷자리에 얌전히 실려 다니면서 생각 한 것이 있다.
나는 절대 운전 안 해야지.
운전석이 아닌 뒷자리에서, 혹은 뉴스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로 건너 듣는 운전이라는 건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사망하기도 하며, 감당하기 힘든 숫자의 금액도 오가니 그럴 만 했다. 게다가 당시 우리집은 교통의 요지인 곳이어서 지하철과 버스로 못 가는 곳이 없었다.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것으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평생을 남의 차 조수석, 뒷자리에서 실려 다니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다지던 나는 30대의 언저리에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 연수도 받았다. 시간 날땐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흥미롭게 찾아보곤한다. 그러나 자차는 아직 없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아직 차도 없으면서 왜그렇게 운전하고 싶어하냐고 물어본다.
그러게. 나조차도 놀라운 변화이지만, 운전을 절대 안하겠다고 선언했던 나에게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나는 그동안 몸소 체감했다. 20대까지는 운전을 못 한다는 사실이 단지 작은 불편함에 그쳤다면 30대가 되고 보니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비운전자의 좁은 시야로는,
1. 도로위를 일들을 읽지 못 한다.
나는 버스를 좋아하는데도 왜 버스는 이 길을 따라서 이쪽으로 가고 같은 방향의 옆 차선들은 저쪽으로 가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없다. 무슨 신호를 보고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모르니까 제일 처음 운전연수를 할 때 마주오는 반대편 차량이 내쪽으로 덮쳐올까봐 무서웠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도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어떤 법이 적용되는지, 심지어 눈 앞의 사고에 대해 누가 무엇을 잘못 한것인지도 알기 쉽지않다. 하지만 도로위의 일은 도로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도로위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이 연쇄적으로 도로 밖을 향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민식이 법 제정이나 요즘의 화두인 도로위 킥보드의 위험성과 같은 일에 대해 알려면 크고 작은 규칙과 이해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운전을 해 보고나니 그런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인해 좋은 운전자로서의 태도를 배우고 있다.
2. 차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밥먹으러 가게를 갈 때 주차장 컨디션이 왜 중요한지, 출퇴근시간에 차를 움직이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거리는 가까워도 차로 훨씬 돌아가야 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어떨 땐 가는 길에 태워다 준다는 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하는 것들을 운전대를 직접 잡아보기 전엔 미처 알지 못 했다.
운전만 하면 예민해지던 친구들의 모습도 완벽히 이해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들은 양반이었다. 내가 본 사람중에 운전 중 가장 예민해지는 예민보스는 바로 나다.
3.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게 된다.
이게 운전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
예를 들어 어쩌다 가 보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그곳이 아주 멀고 대중교통도 녹록치 않은 곳이라면 나는 쉽게 포기해왔다. 가고싶던 근교의 식물원, 카페, 유원지는 언제 갈 지도 모를 '가고싶은 곳'리스트에 들어갈 뿐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 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만 해두다가 '아 거기 어디어디가 좋대' 라고 친구들한테 말하면 운전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은 '그래? 언제한번 운전해서 같이 가지 뭐.'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내가 혼자 하기를 포기하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아 부탁하는 것에 익숙해 지고 말았다. 그런 내 자신을 깨닫는 순간 나는 더이상 가만 있을 수 없었다.
평생을 다른사람들에게 의지한 채로 살 수 없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절대 운전 안 해’가 ‘절대 운전 해’로의 변화는 운전에대한 마음가짐 이상의 것을 변화시켰다.
그 중에서도 내 고향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변화를 기록하고자 한다.
아빠의 대형 그랜져로 내가 운전연습을 할 때 힘든건 그랜져가 대형 사이즈에 연식이 오래 된 구형이라는 점도 있지만 아빠가 조수석에서 탄다는 점에서 운전하기 가장 극악의 난이도였다. 나는 아직 초보라, 옆에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운전 스타일이 조금씩 변화하는데 아빠가 원하는 스타일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네비 말을 잘 듣고 보고 다니라고 하시다가도 갑작스레 네비와는 다른 아빠가 아는 길로 가자고 하신다. 갈팡질팡 하는 상황에서 아빠한테 어떻게 하지? 하고 물어보면 니가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시면서 또, 내 판단으로 행동하면 왜 그렇게 하냐고 또 뭐라고 하신다.
처음에는 이런 아빠를 옆에 태우고 운전하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여서 아빠와 함께 운전연습을 다녀온 첫 날,
엄마한테 ‘다시는 아빠랑 같이 차 안타!’ 하고 씩씩거렸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다는 것을 이미 위의 사례에서 깨닫지 않았던가. 이 '다시는'이란 것도 내 맘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아빠가 잠시 일을 쉬게 되시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아빠의 운전 연수가 시작 된 것이다. 내가 운전해서 출근을 하면 아빠가 그 차를 몰고 또 다시 집으로 오는 식이었는데 왕복으로 2시간 걸리는 거리를 갈 때는 초보 운전의 보조석을 지키고, 돌아올 땐 직접 운전을 하셔야 하니 꽤 피곤한 일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아빠와 매주 한 시간 이상 단 둘이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감정은 낯섦이었다.
아빠는 엄마, 여동생, 나로 이루어진 여초 가족에서 유일한 남자이기도 하지만 당신 스스로도 외톨이를 자처하신 듯 우리와 먼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다. 특히나 성인이 되고 내가 따로 나와 산 후에는 더더욱 아빠와 이야기라는 것을 나누지 않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그 긴 주행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막 차와 운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상태였고 우리집에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은 나와 아빠 뿐이었다. 점차 나는 아빠에게 궁금한 것들이 생겨났다.
‘차 보험은 어떻게 해야 해? ’, ‘아빠 차에 그 악세사리를 달 수 있나? '같은 사소한 것 부터였다. 어떤 때엔 아빠가 먼저 ‘오늘도 운전해서 가 볼래? ‘, ‘아직 혼자 몰기에는 한참 멀었지. 더 연습해야 해.’ 하고 먼저 말을 거셨다. 우리 가족들의 대화에 나의 운전실력이라는 주제가 생기며 아빠의 발언권도 함께 생긴 것이다. 아무런 공통점 없이 섞이지 못 하던 아빠와 나 사이에 운전이라는 작은 공통점이 하나 생겨설까. 겉으론 결코 다정하진 않아도 아빠는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아빠가 즐거워 하시는구나.’
하고 느낀 순간, 아빠와 단 둘이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부담이 사라졌다.
도로에는 도로에서만 통하는 대화가 있다.
삼색 신호등과 좌회전 신호등, 우측 좌측 깜빡이, 하이빔, 끼어들기를 용인해 주는 너그러운 속도, 먼저 가시라는 손 제스쳐 등등. 그런 걸 몰랐던 예전에는 교차로에 가거나 차선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마주오는 차가 갑자기 이쪽으로 올 것 같기도 하고 차선을 바꿔도 되는 지 안되는 지 판단도 전혀 서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와 규칙을 깨우치자, 더이상 도로위가 무섭지 않았다.
아빠의 언어는 나에게 아직 도로 위의 대화보다 어렵다. 한때는 그런 아빠를 이해 불가를 넘어 미움으로 여겼다. 마치 그건 운전을 잘 모르니까 평생 운전 하지 않겠다고 했던 운전에 대한 내 입장과도 같았다. 하지만 살다보면 하기 싫던 것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운전을 몰랐던 나는 이제 살금살금 운전한다.
가까워 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빠와의 관계도 어쩔 수 없이 아빠 차를 타야 하는 순간을 겪으며 조금씩 삼색 신호등이 있는 도로로 나오는 중이다.
물론 둘 다 아직 서투르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