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중학교는 가야지
24년 11월 중학교 입학원서 작성
나날이 몸이 좋아지고, 점점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퇴원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내가 있는 4인 병실에서 두 분은 친정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재활운동을 어찌나 열심히 하시던지 그모습에 감동받아
그분들을 롤모델로 삼고 뭐든지 따라 했다.
병원밥이 아침 7시 30분에 나왔기 때문에
롤모델 여사님들은 5시 40분이면 일어나서
간단히 씻고 사과 하나씩 먹은 후
1층 로비로 내려가 걷기 운동을 하셨다.
나도 그 시간에 일어나 똑같이 사과 먹고
1층 로비로 내려가 회전초밥처럼 로비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종종 바깥으로 나가 시원한 공기도 마시고
출근하는 사람들 구경을 하다보면 내몸도 활력이 돌았다.
계단을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여사님들보다 앞장서서
병실이 있는 층까지 같이 걸어 올라와 비상문도 열어드리고
간단한 심부름도 해드리면서 충실한 막내 역할에 재미도 붙었다.
지난달에 수술 잘하고 오겠다고 웃으며 헤어진 아이들을 못 본 지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내가 사는 곳에는 재활병원이 없어 인근 타도시 병원으로 입원했기에
아이들이 찾아오기에는 초행길에 너무 멀었고
다리가 불편한 친정엄마가 아이들 데리고 여기에 오시기엔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지만, 나도 별 수가 없었다.
아직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무서웠다.
누가 밀치기라도 하면 그대로 꼬꾸라질 것 같았다.
저녁 먹고 낮에 배운 재활운동 복습하러 개방치료실로 올라가려는데
큰애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저녁 먹었어? 이젠 혼자 걸을 수 있어?"
" 엄마 저녁 먹었고, 잘 있어. 걷는 것도 많이 늘었어."
"다행이다. 나 중학교배정원서 써야 돼"
"그래? 언제까지?"
"이번주 금요일까지 선생님이 가져오래"
"선생님이 엄마 아파서 입원한 거 아셔?"
"아니 몰라. 내가 말 안 했어."
"그래.. 굳이 말 안 해도 되지. 원서는 어떻게 쓰는 건데?"
"내 사인이랑 엄마 도장 찍어야 돼. 엄마 도장 어딨어?"
"도장????"
요즘은 거의 쓸 일이 없어서 잘 안 쓰는 도장을 어디다 놨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났다.
"전화 끊지 말고 엄마가 말하면 꼼꼼히 찾아봐. 할머니도 모르니깐
네가 잘 찾아봐야 돼"
그리고 기억력을 되살려 있을 만한 곳을 읊어댔다.
오디오 밑에 서랍- 달그락 거리면 뒤적이더니..... 없어.
컴퓨터 책상 서랍- 동생도 같이 찾는 소리가 들리더니.... 없는데!
안방 화장대 아래 서랍- 전화기를 놓고 갔는지 조용하더니... 없어. 여긴 진짜 없어.
있을만한 곳을 다 얘기했는데 없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순간 번뜩이는 일이 생각났다.
거의 2년을 엄마가 두 개의 소송으로 변호사와 통화하는 일을 자주 보던
인주를 발라 도장을 찍는 게 재미있었는지
내 도장도 달라고 하면서 계약서 만들어서 찍고 놀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제대로 정리를 안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책상 위에 있어야 맞는데...
사안의 중요성을 모르는것 같은 큰애한테 경각심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책상 잘 찾아본 거 맞아? 다시 찾아봐 거기 있을 거야. 대충 보고 없다고 하면 안 돼. 엄마가 못 가잖아. 너 원서 못 내면 초졸 되는 거 알지? 아무리 그래도 중학교는 가야지.
"헉..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엄마"
이번에는 동생도 같이 찾는 거 같았다.
"엄마 찾았어.!!!"
"휴~ 다행이네 중학교는 갈 수 있겠다. 바로 원서에 찍지 말고 종이에 연습해서 찍어보고 엄마한테 보여줘 봐 엄마도장 거꾸로 찍으면 안 되잖아"
"응.. 잠깐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라텔스로 찍어서 보내왔다.
"거꾸로 찍었어. 반대로 잡고 찍어봐 봐."
"응... 잠깐만... 여기 좀 패인 부분이 있네 여기 잡으면 되나?"
"어어.. 맞아."
두 번째 만에 제대로 찍어서 보내왔다.
"엄마 이름 옆에 (인)이라고 있지? 거기다 아까처럼 잡고 찍는 거야, ㅎㅎㅎㅎ 엄마 없어도 잘하네!
기특하네 우리 딸 언제 크나 했는데 벌써 중학교 가는 거야?"
"어 엄마 근데 이번에는 j중학교에 30명 초과로 지원해서 30명은 떨어질 거래"
"안되는데.. 학교 지망 순위가 1순위 j 중학교 맞지?"
"어 근데 3순위는 내가 y중학교로 바꿨어"
"왜? 거기 집이랑 멀어~"
"친한 친구가 거기 썼다고 해서...."
"그랬구나. 알았어. 잘했네"
"까먹지 말고 선생님한테 잘 제출해. 안 그럼 너 중학교 못 간다. "
"알았어. 꼭 낼 거야. "
내가 집에 있더라면 별거 아닌 일이었을 텐데
지금은 병원에 메인 몸이라
큰아이 학교 종이로 중학교 입학 관련 서류
보호자 란에 도장 찍는 것 하나 처리하는데 30분이 훌쩍 지났다.
재활치료실의 창문 너머로 여성병원이 보였다.
문득 큰애 낳았을 때가 생각났다.
거의 하루를 진통해서 낳았는데
그날 태어난 아이들 중 순위에 드는
3.8kg 우량아였다.
태어나 한달도 안돼 장애진단을 받아 5년간을
대학병원을 다니며 치료받다가 이제 더이상 병원에 안와도 된다는 완치판정 받은 날 펑펑 울었던 날도 기억이 나서 목이 메였다.
그 작은 아이 키우면서 순수한 동심에 재미있고
행복했던 일도 참 많았다.
어떤 날은 이렇게 귀엽고 순수한 모습을 나만 보는 것이 아까울 때도 있었다.
같이 손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을 간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간다는 게
실감이 안 나면서 아이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왈칵 치솟는 것을 느꼈다.
더욱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