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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지타 Aug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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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마지막날 저녁에 ‘문콕’이 일어났다. 상단이 찍혔고 상하단이 조금 우그러졌다. 어떤 감정으로 차문을 그리 세게 열었는지 알고 싶진 않다. 그냥 가기에 차에서 내려 불러 세웠고 수리를 요구했다. 잘못을 시인하더니 그 날 저녁에 증거 있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스콜’처럼 거센 욕설이었던 터라 따귀 맞은 것처럼 얼굴이 따끔했다. 경찰서에 갔다. 그 동안 블박에 담긴 문제의 동영상을 USB에 옮겨 담았다. 해당 아파트 주차장 CCTV를 점검했다. 경찰서에서 만났는데 조사관이 공정했다. 조사관 때문인지 곧바로 보험처리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수리를 하러 서비스센터에 갔다. 휴가철이어서 직원이 없었다. 그 다음 주에 센터를 찾았다. 이미 수리하러 온 차들이 상당했다. 어쩔 수 없어 돌아오는 월요일 예약을 잡았다. 차를 입고했다. 센터에서 렌트카를 연계해줬다. 소형차가 없어 S자동차회사의 T가 온단다. 직접 보니 덩치가 꽤나 좋았다. 처음 몰아봤다. 신세계였다. 신호 대기 중이던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흘끔거리는 착각이 들었다.(아줌마, 멋재이!) 안다. 청소년 시기에 ‘개인적 우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트럭도 몰 수 있겠는데...(참고로 나는 소형차 운전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조금만 몰아도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방어 운전 습관 때문인가. 쓴 만큼 채워줘야 한다. 스파크처럼 경차였다면 좋았을걸. 라디오 음질이 별로였다. 영화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속닥거리지? 폰을 연결하고 볼륨을 올려도 눈치 없이 턱 밑에서 계속 속삭이는 느낌에 간질거려 꺼버렸다. 게다 조금만 차를 세워도 엔진이 멈춰 여유 있게(!) 출발하곤 하던데, 저녁에 투잡을 하기 위해 단 일 분이라도 빨리 가야 하는 내 마음에는 산불이 몽글거린다. 그러면서도 연기가 새어나올새라 좌회전을 꺾으며 '소원성취했구만.' 중얼거린다. 쌍차 파업 당시 김의성 배우의 제안대로 흰 판지에 'OOO를 타고 싶어요' 문구를 적고, 노조원들을 복직시키라며 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내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내 직업과 어울리기엔 너무 뚱뚱했다. 나는 방문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이동노동자다. 좁은 시골길에서 맞은편 차와 마주치면 뒤로 후진하거나 옆으로 비켜줘야 하는데 논두렁이 대부분이다. 진흙에 처박히는 것도 골치 아프지만 보험처리하기 애매한 기스라도 나면 현금을 털어야 한다. 카드 결제일이 낼 모레다. 안 될 말씀이다. 어쩔 수 없이 집근처 초등학교에 고이 모셔놨다. 걸어 다녔다. 소형차 문짝이 고온으로 압축되는 시간에 내 정수리는 오존으로 달궈졌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문콕인가? 문콕을 한 그 사람 때문인가? 삼일째 연락 없는 서비스센터 탓인가? T를 연계해준 서비스센터 직원, 그 냥반 때문에? 아니지, 운전 실력이 형편없어서 아닐까? 아니, 아니, 그것보다는 기스를 내더라도 당당하지 못한 내 성격이 문제겠지. 성격이 문제겠는가, 언제나 그렇듯 츄르 먹는 고양이처럼 내 잔고를 쪽쪽 핥아먹는 카드 회사, 그 말인즉슨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경제적인 곤란함에 부딪히고 있다는 거...그만 하자.  

   

나흘째 되던 날 서비스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고쳤으니 가져가란다. 그런데 한 시간 뒤 출근 시간이다. 당장 찾아와 저녁에 공원으로 산책을 가고 싶다. 며칠 동안 풀냄새를 맡지 못한 ‘뚜니들’을 기분 좋게 해 주고 싶다. 개털 날리면 청소가 어렵다고 렌트카 사장은 난색이었다. 아침 일찍 검진을 받아야 하는 녀석이 있어 혹시라도 털이 빠질까 목에 큼지막한 노란 보자기를 둘러씌우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데크가 발톱에 긁히면 물어내라 할까 두려웠다. “움직이면 안 돼!”, “털면 안 돼!”를 를 연발하며 한 손으로 리드줄을 쥐고 한 손으로 운전하는 기행을 벌이면서 말이다. 당장 내 차를 찾아와야 한다.


셀프주유소에서 모자란 기름을 넣다 보니 처음 겪는 일이라 연비 계산도 안 되고, 오천원 정도 더 들어갔다. 개털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혹시나 싶어 셀프세차장에 가서 에어라도 불겸 도착하니 지갑에 현금이 하나도 없다. “이런 씨...”그 동안 건조할대로 건조해진 마음결을 타고 연기를 뿜으며 산불이 타다닥 타오르더니 급기야 입에서 육두문자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너는 왜 늘 이 모양이야, 왜! 왜 이따위로 살어?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스트레스 상황이 막판에 다다르자 제일 익숙한 방법으로 망가트려 버린다. 나를, 내가.      


출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은행에 도착하니 지갑에 오백원짜리 동전이 뾰족 올라와있다. 다시 세차장이다. self란 단어가 오늘따라 뇌리에 박힌다. 나는 혼자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혹시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연스레 에너지를 뺏기고 있는 상황들은 무엇일까? 독거 노모의 우울과 짜증 즉 돌봄의 고통들이 견디기 힘이 드는가? 한편으로 기후 위기에 취약하고 감정을 죽여야 하는 노동자이며 개와 고양이들의 복지를 위해 고군분투해서? 많은 것들을 혼자 버티고 지켜내야만 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루기 위험한 분노가 잠재되어 있는가? 내가 철인3종 경기에 도전하는 선수도 아닌데 언제부터 이렇게 걷고 뛰고 달리다 차를 타고 슈퍼 레이스 클래식 경기까지 참가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 삶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신 없어졌지? 아마도 엄마가 노인이 되면서, 언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노견이 되면서...결국 나를 지배하려는 죽음과의 싸움이었구나. 살기 위해 발버둥치도록 설계된 자연의 프로그램.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혼자서, 고독하게, 수행해야 한다면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맹렬히 타오르던 산불은 지저분한 회백색 눈송이처럼 재를 날리고 잦아들었다. 참...이런 날도 있다.      


소형차의 이름은 쌩돌이. 뚜니들의 스쿨 버스. 밤산책을 떠나기 위해 저녁에 차문을 열었다. 익숙한 개비린내와 여기저기 달라붙은 개털들. 약간의 페인트 냄새. 시동을 걸자 아이폰을 감지한 쌩돌이가 92914의 ‘moonlight’를 들려준다. 최고다. 음질 말이다. 또 있다. 물감처럼 번지는 회색 구름 속에서 반짝 나온 달빛도. 하현이다. 이지러진다. 가사를 흥얼거린다. Let the moonlight shine on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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