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따라 미국 온 개발자의 미국 취업 이야기 part 2
우선 미국의 일반적인 정규직(full-time)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서류 > 리크루터 콜 > (HM 콜) > 온라인 코딩 테스트/비디오 콜 코딩 인터뷰 > onsite 인터뷰 > (HM 콜)
서류 지원은 한국과 유사하게 각 회사의 채용 홈페이지나 리크루터/헤드헌터를 통해 가능하고, 특정 팀을 지정하여 넣을 수도 있지만, 2-3개의 팀과 인터뷰를 보고 난 후 나에게 관심 있는 팀 중에서 선택하는 multiple opening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디즈니는 특정 팀에, MS는 multiple opening에 지원했었다). 제출된 서류는 담당 리크루터에 의해 1차적인 검토가 이루어지는데, 리크루터는 본인이 담당한 지원자의 채용 여부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받기 때문에 레주메를 참고하여 채용 가능성이 높은 지원자들을 위주로 걸러낸다. 이 때문에 리크루터 콜 단계에서 간혹 지원동기와 같은 behavior question이나 프로젝트 관련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보통은 간단한 자기소개 후 향후 인터뷰 절차에 대한 안내를 듣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HM(Hiring Manager) 콜은 말 그대로 지원한 팀의 매니저와 지원자가 비디오 콜을 진행하며 지원자의 기술 스택이나 컬처 핏을 확인하는 단계인데, 이는 회사 및 팀에 따라 생략하거나 multiple opening의 경우 온사이트(onsite) 합격 이후에 진행하기도 한다.
이후 본격적인 기술 면접 단계에서는 먼저 지원자에 대한 사전 스크리닝(screening)을 위해 온라인 코딩 테스트 또는 비디오 콜 코딩 인터뷰를 진행한다. 전자의 경우 보통 한국 IT기업에서 채용 시 진행하는 온라인 코딩 테스트와 유사하게 주어진 시간 내에 2-5개의 알고리즘 문제를 풀어 제출하는 형식이고, 후자의 경우 면접관과 1시간가량 1:1 비디오 콜을 진행하며 실시간으로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형식으로, 온사이트의 짧은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크리닝에 통과한 후보자는 최종 단계인 온사이트 인터뷰에 초대받게 되는데,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기준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온사이트 인터뷰가 원격으로 진행되고 있다. 온사이트는 일반적으로 1시간 내외의 인터뷰 세션이 4번 연달아 진행되는데, 중간중간에 있는 짧은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대략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각 세션은 사전 스크리닝에서 진행했던 비디오 콜 코딩 인터뷰와 동일하게 실시간으로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일부 세션은 알고리즘이 아닌 시스템 디자인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시스템 디자인은 밑도 끝도 없이 '특정 서비스(e.g.,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등)를 디자인하라'는 문제가 주어지면, 지원자는 요구조건 명세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변수와 상황(e.g., 확장성, 가용성, fault-tolerance 등)을 고려해가며 적절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는 인터뷰 형식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테크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고, 특히 연차가 높을수록 알고리즘보다 시스템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저연차에 속하기 때문에 4개의 세션 중 1개만 시스템 디자인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연히 몇 개의 세션이 시스템 디자인 혹은 알고리즘인지는 사전에 알 수 없다. NDA에 서명한 관계로 인터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유할 수 없으나, 알고리즘의 경우 대체로 leetcode 미디엄 정도의 레벨에서 출제되었고, 하드 레벨에 해당하는 문제도 가끔 있었다. 서류접수부터 오퍼를 받기까지의 대략적인 프로세스 소요 기간은 디즈니의 경우 한 달, MS의 경우 7주 정도였다.
디즈니와 MS 양쪽에서 오퍼를 받고 난 후에는 고민이 참 많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MS에 조인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우선 향후 커리어나 환경적인 부분에서 이점이 많았고, 무엇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현재 남편 비자에 기생 중이고 정식 워크퍼밋(EAD)이 아닌 바이든 정부의 서류 몇 장 짜리 행정명령으로 취업을 하고 있는 입장인지라 아무래도 이런 측면에서 좀 더 안정적인 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MS는 내 비자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를 캐나다나 한국 지사로 트랜스퍼해줄 있는 회사였다).
벌써 몇 달 전이지만 첫 오퍼 콜을 받았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기쁨보다는 그간의 마음고생과 서러움으로 거의 오열을 했었다 ㅎㅎ;; 경력단절이 싫어 이 악물고 한국에 남아 무려 1년 7개월간 영국에 있는 남편과 떨어져 지냈던 나날들, 미국에 와서는 워크퍼밋 문제로 마음고생했던 시간들, 처음 알고리즘 문제를 풀며 동시에 영어로 설명하는 연습을 할 때에는 뇌가 꼬이며 영혼이 분열되는 것만 같았던 기억, 자신감이 떨어질 때면 나약한 생각을 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 비로소 얻어낸 오퍼. 사실 과정은 그다지 즐겁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모든 걸 견디고 얻어낸 성취는 참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뿌듯하고 짜릿했었다. 아 물론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주말만 기다리는 여느 K-직장인과 다름없다.
8개월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백수생활을 끝내며, 미국 정착의 마지막 단추라고 생각했던 취업 기를 이렇게 부족한 글로나마 기록해두고 싶었다. 부족한 글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더욱 좋고. 회사생활이나 이민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다른 글에서 풀어보기로 하고, 이번 글은 회사에서 보내준 보급품 사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