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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Nov 03. 2022

계획을 세우질 말던가, 아니면 널럴하게 세우던가

우당탕탕 1주일 일본 살이 #1/출발

요즘 생각도 많고 여러 가지로 머리를 비울 겸 해서, 마침 10월 11일, 일본은 3차 백신을 맞았거나 PCR 검사에 문제 없는 사람들에 한해 일본이 여행의 문을 연 만큼, 잠시 도망가듯 일본에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예산은 빤하니 제일 싼 비행기를 잡아타고 오사카로 향합니다. 아침 7시 50분 오사카행 티웨이 항공. ‘설마 그 시간에 사람이 있을까?’하고 나름 널럴하다고 잡은 출국 일정은 대실패. 새벽 5시에 도착한 인천국제공항은 각국으로 떠나는 사람으로 미친듯이 붐벼댔고 출국 수속에 백신 접종/PCR 검사가 끼어 있다 보니 평소 20~30분 걸리던 시간은 거의 두 배가 되었다. 티웨이 항공 비행기 승강 게이트는 인천공항 1터미널도 2터미널도 아닌 탑승동? 셔틀 열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또 시간을 잡아먹고… 결국 게이트에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 아침은 커녕 모닝똥 쌀 시간도 없네…

보통 해외 여행때 제일 설레는 순간은 비행기가 이륙해서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기 위해 상승하는 순간이라 하던가? 나도 그 의견에는 일부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새벽 세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왔던지라, 비행기가 움직이면서 잠이 들어 눈 뜨니 어느새 간사이 공항 상공. 이제부터 일본 내 일정은 널럴하니 좀 쉬엄쉬엄 다녀야지. 그러나 입국 수속도 만만치 않습니다. 


왼쪽부터 입국 건강 검사 프리패스 앱 MySOS, 입국시도 줄이 평소보다 심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오른쪽은 실내 마스크 착용 안내문. 얘들은 뭐든지 모에화 시키네요.

백신 접종 증명서도 미리 준비하고 일본 입국 건강 검사 프리패스 MySOS 앱도 깔아왔지만 이전에 십몇분이면 끝나던게 거의 40분 넘게 걸리네. 어쨌든 그래도 계획은 여유있게 잡았으니까! 웃는게 귀여운 JR 여행 안내 센터에서 미리 예약해둔 하루카 열차 티켓을 수령하고 귀여운 직원의 ‘이꼬까 카드?’ 라는 말에 혹해 헬로키티 ICOCA 카드도 하나 사고 11시 좀 넘어 산토리 맥주 공장으로 출발했다. 

왼쪽은 하루카 티켓과 ICOCA 카드. 오사카에서 현금카드/교통카드로 쓸 수 있어요. 오른쪽은 하루카 열차. KTX보다 좀 구립니다

공장 부근인 나가오카쿄 역에 도착하니 12시 10분. 산토리 맥주 투어 예약은 오후 1:45분이니 한 시간 반이나 시간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허기가 확 밀려왔다. 아 뭐좀 먹어야지. 그래. 맥주 맛도 제대로 느끼려면 배가 차야해. 공복 상태면 뭐든지 맛있다고! 

일본의 술집인데 낮에는 점심을 팝니다. 이 메뉴는 우동 정식. 제일 싸서 시켰는데 알차게 잘 나오더라고요. 오른쪽은 뭐... 생맥주는 어디 가서 시켜도 다 맛있더라고요.

나가오카쿄는 예전에 아주 잠시 일본의 수도이고 이래저래 상권이 잘 되어있다고는 하는데, 역 근처엔 뭐가 진짜 없더라고요. 마침 문을 연 작은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니, 점심은 한국의 백반 같은 정식만 팔더라고요. 850엔 짜리 찬 오뎅+우동 정식을 시켰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외국인이 먹는 방법을 모를까 걱정하며 계속 챙겨주시는게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에라 모르겠다 생맥주도 시켜봅니다. ‘나마비르~’


기분이 좋아 가게 문을 나서니 시간은 어느새 1:20분. 이런! 공장행 버스가 떠나버렸네요 ㅠㅠ 다음 버스는 2시에 있다고… 구글맵을 켜서 공장을 찍어보니 걸어서 30분. 그래. 남는게 체력인데,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금 생각해보니 꽤 좋은 도보 여행이었어요.  

넓은 길에서 차츰 좁은 길로, 평지에서 조금 언덕을 올라 강둑길 같은 곳을 빠르게 걷고 있으니 기분도 상쾌하기는 개뿔 힘들어 죽겠네. 숙소는 교토라 일주일치 짐을 그대로 들고 다니려니 땀이 비오듯 떨어집니다. 요즘 일본 쌀쌀하니 옷 신경쓰시라고 흘리던 문** 팀장 미워. 참, 11월 2일 오사카/교토의 낮기운은 22도였답니다. 저는 후디 차림. 그래도 지금와서는 그때 걷던 길과 강둑의 풍경이 정말 따스하고 좋았어요. 

헐레벌떡 산토리 공장 체험센터에 들어서니 일본 직원이 문을 열고 웃으며 반겨줍니다. ‘쫑민 상?’ 역시 제가 꼴지네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산토리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사실 뭐 이건 그닥 관심 없었고 가장 기대되는 시음 타임. 예전에는 산토리의 대표적인 라인업 을 샴페인 잔 세 잔에 따라 주고 20분 내에 원하는 만큼 더 받아 마시는 타입이었는데, 이제는 가장 기본적인 맥주 한 잔과 함께 대표적인 산토리 제품 세 개를 한 모금씩 주고 그 중 마음에 드는걸 한 잔 더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더라고요. 

아... 비슷하면서도 생경한 이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시음을 마치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이제 교토 숙소로 갑시다! 아….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역시 또 전철을 잘못 탔네… 일본 전철이 워낙 헷갈리기는 하지만 이건 살짝 취해서 그런거겠죠? 이제는 숙소까지 속을 썩입니다. 아 이거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 에어비앤비에서 제일 싼 숙소라 온거긴 하지만 뭐 근처에 랜드마크도 하나 없고… 겨우겨우 동네를 한 시간동안 걸어 헤멘 후에야 숙소로 들어올 수 있었어요. 시음이 2시 반에 끝났으니, 서울로 치자면 천호에서 홍대 정도 거리를 오는데 세 시간이 걸렸네요. 

넘 피곤해 씻고 잠시 몸을 뉘인 후 슬슬 저녁을 먹으러 나가봅니다. 하지만 외진 곳이라 뭐 식당 자체가 없어요. 마침 숙소 앞에 왠 식당이 영업을 하길래 일단 무작정 들어가보니, 철판 요리집이더군요. 한국에서는 철판 요리 하면 굉장히 비싼 곳으로 생각하는데, 여기는 주방장이 요리한 것을 그냥 테이블마다 있는 철판에 얹어주고 따뜻하게 먹는 스타일? 야끼소바와 맥주를 하나 시켰는데, 맥주 병이 심하게 정겹습니다. 아 이 작은 잔 정말 마음에 들어!

그렇게 양은 많지 않더라고요. 소바와 함께 맥주를 홀짝홀짝 먹다 보니 맥주를 다 먹기도 전에 소바가 떨어지고… 음식 맛이 괜찮아 대창볶음도 하나 시켜보니 이번엔 맥주가 떨어지고… 이러다 무한반복 될 것 같아 일본 소주를 시켜보기로 했습니다. ‘헤이 마스타. 쇼쥬 잇본 구다사이’

아, 일본식 소주를 ‘쇼쥬’라 발음하는데요. 일본에서는 쇼쥬를 주문하면 섞어먹을 수 있는 얼음물과 함께 내어주거나 애초에 얼음물에 한국 소주잔으로 한 잔 반 정도를 섞어 줍니다. 그런데 또 한국은 또 이런 스타일 아니잖아요? 주인한테 ‘노 아이스 노 워터, 온리 쇼쥬!’ 하니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큰 물컵에 쇼쥬를 가득 따라 주더라고요. 가격은 똑같고. 아싸 개꿀~ 옆 손님과 함께 마시기 시작해 맥주 두 병에 쇼쥬 한컵, 야끼소바에 곱창구이까지 먹고도 한 2,500엔 나왔나? 이정도면 한국 술집보다도 저렴하네요!

제 옆 손님은 중국인인줄 알았는데, 이런 제 행동을 보고 말을 겁니다. ‘한국인이세요?’ 알고보니 저랑 같은 숙소에서 묵는 한국 청년이더라고요. 이 청년과 숙소에 들어와 호로요이 비슷한 일본 캔술을 몇잔 마시고 잠을 청하는 것으로 여행의 첫날은 불을 끄기로 했습니다. 아… 내일은 뭐하지?


다음글 보기: 우당탕탕 1주일 일본 살이 #2/교토 - 금각사는 왜 자꾸 나를 밀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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