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치기보다 ‘사는’ 취미에 대한 변명
남는 시간에 뭘 하냐 제게 물으면 으레 이렇게 말합니다.
취미로 기타를 칩니다
고등학교 때 시작해 지금도 치고 있으니, 뭐 한평생 쳐온 셈이죠. 그런데 요즘은 멘트를 좀 바꿀 필요가 있겠습니다.
취미로 기타를 삽니다
수능 끝나고 알바한 돈으로 낙원 상가에서 짝퉁 일렉 기타를 한 대 산 이후로 대체 전 얼마나 많은 기타를 사고판 것일까요? 기억에 의존해 대강 세어보니, 27년 동안 30대는 넘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그만큼 기타를 열심히 쳤냐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만…그런데 제 취미가 기타를 치고 밴드를 하는 거였으니까, 좀 변화가 필요했어요. 이제 기타 그만 좀 사고 연주하고 밴드에 집중하자.
일단, 기타 대수를 좀 줄여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돈이 없기도 했고…) 당시 가지고 있던 기타 7대 중 누구에게 선물을 받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녀석을 제외하니 한 4대 정도가 남더라고요. 그것 중 6개월간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기타나, 그렇게 정이 가지 않는 기타들은 중고로 내놓기로 하고 리스트업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리스트업을 해 두 대 정도를 추려냈습니다. 첫 번째 후보는 Paul Reed Smith CE-22. 이 녀석은 2008년인가 손에 잘 맞지 않던 Gibson Les Paul Classic을 괜찮은 가격에 처분한 후, 깔끔한 2003년 형 신동품을 구입해 꾸준히 써오던 녀석입니다. 알맹이 있는 클린톤과 아주 단단한 드라이브 톤을 들려주던, 과할 정도로 좋은 기타였어요. 하지만 어떤 철면피가 빌려가 6개월 정도 학대해서 흔적도 많고 담배 냄새까지 배어있어 이번 기회에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두 번째 녀석은 Line6 Variax Standard. 평범한 스트라토캐스터 타입 기타같이 생겼지만, 기타 내부에 소형 컴퓨터 회로가 내장된 괴짜입니다. 그러나 내장된 컴퓨터를 통해 기타 소리를 세계적인 ‘명기’(名機)사운드로 바꿔주는 재미있는 악기에요. 특히 기타용 멀티 이펙터 Line6 Helix LT와 함께 사용하면 더 그럴싸해지고요. 그런데, 기타리스트가 보통 기타를 오래 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기준 사운드가 생기고 그걸 주로 활용하게 되거든요. 게다가 흉내는 흉내다 보니, 이 기타는 점점 쓰는 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냉철한(?) 고민 끝에 눈물을 머금고 이 두 녀석을 다른 곳으로 입양 보냈고 메인 기타로 쓰는 Suhr Modern Satin을 비롯한 총 네 대의 기타만 남았습니다. 두 대는 친구 빌려줬으니 이젠 나머지만 열심히 파고들어야겠어요. 이렇게 Francis는 남은 기타들과 함께 Ever After… 한두 개의 기타에만 집중하다 실력이 늘면서 행복한 기타 생활, 밴드 생활을 이어 나가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끝났으면 아주 교훈적이고 행복한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늘 세상은 그런 법이지요. 개가 똥을 끊고, 국힘이 거짓말을 끊을까요? 4개월 전, 기껏 큰맘 먹고 고민하고 고민하다 내보냈는데 현재 빌려준 것 두 대, 남겨놓은 것 두 대 포함해 기타는 오히려 8대까지 늘어났어요. 심지어 샀다가 한 2주 만에 다시 팔아버려 저 리스트에 들지 못한 기타도 있고요.
맘먹은 지 1년도 안 됐는데 오히려 한 대 더 늘어난 기타… 인제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뭐… 기타 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또, 한두 대 빼고는 평생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샀다가 다시 팔 때 감가상각은 그냥, 기타를 잘 가지고 논 ‘대여비’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대신 한 번 샀던 기타는 일종의 비망록에 남겨 ‘기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최근 구입한 녀석부터 이전에 샀던 녀석들까지, 사진이 있는 건 모두 남겨볼 생각이니 심심하신 분 많이 놀러 와 주세요!